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GIMHAE NATIONAL MUSEUM
전시가야는 철을 중심으로 낙랑, 중국, 일본은 물론 한반도의 여러 지역과 교역했습니다. 교역에 필요한 다양한 물길과 뭍길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이 활발했습니다. 남해와 서해로는 낙랑·대방·마한(백제)과, 동해로는 신라·동예와 교류했고, 쓰시마·규슈·긴키 등을 연결한 바닷길로는 왜와 교류했습니다.
이에 따라 가야에서는 자연스럽게 배가 발달했는데, 배의 규모나 생김새는 배 모양 토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는 당시 바닷길을 오가던 배의 일부인 나뭇조각이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조각으로 오래전 김해평야를 가로질러 봉황동 유적까지 닿는 물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고분군에서는 중국을 비롯하여 북방 유목민, 왜(일본), 신라, 백제, 고구려 등과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김해 대성동·양동리 유적에서 나온 중국·왜의 물건과 로만 글라스는 금관가야가 국제적으로 교류했음을 보여 줍니다.
대가야 지역인 고령 지산동 유적에서는 챙 달린 투구 같은 일본계 금속 제품과 오키나와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 등 5세기 무렵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합천 옥전 무덤에서는 서역과 관련된 유리잔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도 토기, 덩이쇠 등 철로 만든 가야계 유물이 다양하게 나와 가야 토기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스에키가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규슈부터 긴키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대가야계 금동관이나 금귀걸이, 금은제 말갖춤 등 5세기 무렵 이후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가야가 주변 나라들과 외교적 관계를 활발히 맺었음을 말해 줍니다.
김해 봉황동 119-9번지 유적에서 노와 배의 일부로 보이는 조각이 나왔습니다. 나무로 된 이 조각은 금관가야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활발히 교류했음을 처음 확인한 사례입니다. 한편 배 모양 토기와 함께 가야의 배 구조를 알아내고 배 만드는 기술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 조각의 길이는 약 390cm이며, 곡선과 직선 무늬, 쐐기 등으로 보아 뱃머리나 배 끝의 옆판 상단부로 보입니다. 배의 전체 길이는 8~15m가 넘었을 것입니다. 이 조각을 약 18개월 동안 보존 처리를 한 결과 몸체는 녹나무(혹은 생달나무), 쐐기는 삼나무, 노는 상수리나무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전시품은 무단 복제 사용이 금지되며 소장품 복제 신청을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신청 절차 및 신청서 다운로드는 홈페이지 소장품/학술/출판 -
소장품복제·열람 - 소장품 복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