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HAE NATIONAL MUSEUM
전시철은 청동보다 단단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입니다.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의 초기 철기 시대 유적에서 중국 연나라(기원전 323~기원전 222) 화폐인 명도전과 철로 만든 물건이 함께 나와 이 시기에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성장 기반은 ‘철’이었습니다. 고대 사회는 철이 널리 쓰이면서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생산한 철은 화폐처럼 쓰였으며, 낙랑과 대방, 왜(일본)에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가야 유적에서 나오는 덩이쇠는 크기나 모양이 일정해 물건을 사고팔 때 돈처럼 쓰일 정도로 해상 교역의 중요한 물품이었습니다.
갑옷은 전투할 때 칼이나 화살을 맞지 않도록 몸을 보호해 주는 옷입니다. 처음에는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다가 쇠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철 갑옷도 만들었습니다. 갑옷은 철판 형태에 따라 판갑옷과 비늘갑옷으로 나뉘는데, 철판을 연결할 때는 못이나 가죽끈을 이용했습니다.
방어 기능이 뛰어나고 몸에 딱 맞는 갑옷을 만들려면 최고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갑옷에는 장식도 했는데, 새나 고사리무늬로 장식된 갑옷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확인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갑옷의 무게는 4~5kg 정도이지만, 쇠가 녹슬기 전에는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는 세로로 길게 자른 철판을 가죽끈이나 못으로 연결해 만들었으며, 윗부분은 깃털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투구의 종류는 세로로 긴 철판을 엮어 만든 것에 반원 모양의 판을 얹은 투구, 앞쪽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투구, 모자 앞에 챙을 단 투구, 관모 모양의 판을 붙인 투구 등이 있습니다.
말갖춤은 기능과 쓰임에 따라 말을 다루는 제어구, 말을 탔을 때 몸을 안정되게 하는 안정구, 말을 장식하는 장식구로 나눕니다. 가야의 김해 대성동·양동리 유적에서는 4세기 무렵 쓰인 재갈과 발걸이, 5세기 무렵 쓰인 장식용 말갖춤을 볼 수 있습니다.
제어구에는 대표적으로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 있으며 안정구에는 안장과 발걸이, 장식구에는 말띠 꾸미개, 말띠 드리개, 방울 등이 있습니다. 안장이나 발걸이는 문양을 더하거나 재질을 바꿔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말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은 말을 탄 사람의 정치·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거나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습니다.
말은 삼국시대 이래 전쟁에 자주 이용되었습니다. 중장 기병은 말과 기병 모두 철 갑옷으로 중무장한 전사를 말합니다. 중장 기병은 주로 적진에 돌진하여 보병 대열을 흩트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가야 유적에서 보이는 말의 갑옷과 투구는 당시 철기를 만드는 가야의 기술이 최고였음은 물론 가야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치열하게 벌였음을 알려 줍니다.
활쏘기는 우리의 오랜 전통입니다. 활과 화살대, 화살통은 주로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어져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활이나 화살대가 드물게 발견되어 그 형태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화살은 신호를 보낼 때, 사람을 죽일 때, 불을 붙여 쏠 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화살촉을 박아 만들었습니다. 무덤에서 화살통에 담긴 화살촉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화살통은 겉에 무늬를 넣고 옻칠을 하거나, 가장자리와 통을 메는 끈의 부속품을 금·은·금동으로 만들어 꾸미기도 했습니다. 형태를 복원해 보면 가야 사람들이 화살통을 어떻게 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야는 철이 풍부하고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의 표적이 되어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의 수많은 전쟁 기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가야의 칼과 검, 창과 화살은 점차 강력해졌습니다.
무기는 전쟁에서도 쓰였지만 용, 봉황 장식으로 꾸민 큰 칼이나 긴 창 등은 다른 나라와 교류할 때나 신분을 드러낼 때도 쓰였습니다.
고대 사회는 철을 만들고 철 제품을 보급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무덤에서 나오는 수많은 철제품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고성 조개더미, 김해 하계리·여래리나 창원 봉림동 유적에서 확인한 철 생산 시설과 고분에서 나온 집게·모룻돌·망치 등 쇠를 다루는 도구는 가야가 철광석에서 쇠를 뽑아내는 기술과 쇠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음을 말해 줍니다.
가야가 쇠를 만드는 방법은 앞선 기술이었던 만큼 전문 장인이 은밀하게 전수했습니다. 광석을 캐고 불순물을 없애 순수한 쇠를 만드는 과정에는 복잡한 전문 지식과 능숙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김해 퇴래리 소업 유적에서는 철기를 만들었던 장인들의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덤에는 장인이 사용한 집게와 망치 같은 연장이 같이 묻혀 있었습니다. 이 중 1호 무덤에서는 큰 고리자루칼과 쇠로 기구를 만들던 연장이 모두 발견되어 무덤 주인이 비교적 신분이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 장인의 신분이 높았던 것은 가야에서 쇠를 다루는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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