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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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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HAE NATIONAL MUSEUM

전시

낙동강 하류지역의 선사문화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며, 주로 몸돌석기와 좀돌날몸돌, 슴베찌르개 등 작은 석기류가 출토됩니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식량을 저장할 토기와 간석기가 출현하고, 초보적인 농사를 시작합니다. 주로 자원이 풍부한 강가나 바닷가에서 살며, 때로는 먼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기도 했습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와 간석기, 민무늬토기를 사용했습니다. 본격적인 논농사를 지었으며,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표한하기 위해 거대한 고인돌을 세웠습니다.

1장 돌로 사냥하고, 열매를 따면서

인간이 두 발로 서서 걷고 손을 사용하면서 여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도구 제작은 인류가 자원을 활용하고,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가는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돌을 깨뜨려 끝을 날카롭게 만든 석기로 사슴, 노루, 멧돼지 등을 사냥했습니다. 작고 빠른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활과 화살 같은 도구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사냥과 달리 별다른 기술이나 도구 없이 손쉽게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풀이나 나무줄기, 열매 등을 직접 따는 것입니다. 식물 채집과 관련한 물질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도토리·가래 같은 견과류나 이것을 담는 망태기 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1장 돌로 사냥하고, 열매를 따면서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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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흙을 구우면 단단해지는 변화를 터득해 그릇을 만들고, 식량을 저장했습니다. 가장 빠른 신석기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한 무늬 없는 갈색 토기입니다. 그 뒤 무늬 없는 토기 위에 덧띠를 붙여 만든 덧무늬토기 [隆起文土器]가 나타나는데, 김해 시산리 조개더미에서도 확인됩니다. 신석기시대 중기가 되면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한반도 전역에서 유행합니다. 빗살무늬 외에 자돌무늬[刺突文]나 누른무늬[壓印文]도 있습니다. 후기나 말기에 이르면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및 짧은빗금무늬토기[短斜線文土器]가 나타납니다.

2장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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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두려움을 떨치고, 풍요로움을 바라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할 때도 죽은 후의 세상에서 현세와 같은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죽은 이를 화려하게 꾸미는 등 여러 의례를 행했습니다.

장신구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성性 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죽은 이의 몸에 여러 장신구를 걸쳐 무덤에 함께 묻습니다. 주로 옥·조가비·뼈·짐승 이빨·흙 등으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나 발찌 등이 있습니다.

3장 두려움을 떨치고, 풍요로움을 바라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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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밟았던 땅에 숨겨진 사실

창녕 비봉리조개더미 퇴적층의 두께는 무려 7m(해발 약 4.5 ~ -2.5m)에 달합니다. 대략 1만여 년의 시간동안 쌓인 흙으로, 주로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유적의 퇴적층 규조 분석 결과,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해역으로 밝혀졌으며, 조개더미는 대부분 재첩으로 형성되었습니다

5개의 조개더미층과 10여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되며, 다양한 토기와 동물뼈, 도토리 저장구덩이 등을 발견하였습니다. 식량 획득과 저장, 가공과 조리(탄화물)에 대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4장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밟았던 땅에 숨겨진 사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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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물고기도 잡고, 맞바꾸기도 하고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풍부한 바다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물고기 잡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작살, 낚싯바늘, 그물추[漁網錘]가 그 증거입니다. 그물추를 매단 그물은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했고, 작살을 맞은 고래 뼈가 발견됨으로써 고래를 잡는 기술도 발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흑요석과 일본 죠몽토기[繩文土器]가 발견되는 것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 사람들과 교류했다는 증거입니다. 흑요석은 화산이 폭발할 때 생성되는 광물로 깨뜨리면 유리처럼 날카로운 날이 생깁니다. 남해안 일대의 흑요석은 일본 북부 규슈산[九州産]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열도에서도 빗살무늬토기, 뼈 목걸이와 조개 팔찌, 결합식 낚싯바늘 등 한반도에서 제작된 유물이 발견되어 두 지역의 교류상을 알 수 있습니다.

5장 물고기도 잡고, 맞바꾸기도 하고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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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를 발견하다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통나무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서 200살 된 소나무를 U자 모양으로 파내어 만들었습니다. 방사성탄소(C14) 연대 측정 결과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키리키〔伊木力〕 유적에서 출토된 배보다 약 2,000년 이상 오래된 것입니다. 최근 울진 죽변리 유적 신석기시대 문화층에서 배 편과 노로 추정되는 녹나무 편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6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를 발견하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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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바닷가 신석기시대 무덤이 말해주는 진실

부산 가덕도 유적은 한반도 최대의 신석기시대 공동묘지이며, 당시의 장례 풍습을 생생하게 알려 줍니다. 지질 환경이 적합한 탓에 무덤에 묻힌 48개체의 인골이 잘 남아 있습니다. 피장자는 머리를 주로 바다 방향을 향해 두었습니다.

무덤에 사람을 묻을 때는 바로 눕혀묻기, 옆으로 눕혀묻기, 팔이나 다리를 구부려서 묻기 등 여러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주로 바로 눕혀묻기 방식이지만, 가덕도 무덤은 구부려서 묻은 것이 많은 편입니다.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는 많은 토기와 석기를 함께 넣어 주며 뼈로 만든 치레걸이와 조가비 팔찌로 꾸미기도 했습니다. 성별을 확인한 18개체 가운데 남성이 8개체, 여성이 10개체이며, 연령대는 20대에서 50대까지 골고루 분포합니다. 키는 남성이 평균 157cm, 여성은 146cm입니다.

7장 바닷가 신석기시대 무덤이 말해주는 진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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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여러 가지 빗살무늬를 살펴볼까요?

신석기시대 토기는 무늬에 따라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와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로 구분됩니다. 덧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진흙 띠를 붙이거나 토기 겉면을 양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무늬를 만든 것입니다. 빗살무늬토기는 빗 모양의 무늬새기개로 토기 겉면을 누르거나 찍거나 그어서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무늬를 만든 토기입니다. 무늬는 토기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아가리ㆍ몸통ㆍ바닥으로 구분하여 각각 다른 무늬를 새깁니다. 무늬 종류는 손톱ㆍ세모띠ㆍ무지개ㆍ겹톱니ㆍ문살ㆍ생선뼈 등 다양하며, 무늬의 구성도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변화ㆍ소멸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8장 여러 가지 빗살무늬를 살펴볼까요?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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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여러 가지 빗살무늬를 살펴볼까요?

신석기시대 토기는 무늬에 따라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와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로 구분됩니다. 덧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진흙 띠를 붙이거나 토기 겉면을 양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무늬를 만든 것입니다. 빗살무늬토기는 빗 모양의 무늬새기개로 토기 겉면을 누르거나 찍거나 그어서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무늬를 만든 토기입니다. 무늬는 토기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아가리ㆍ몸통ㆍ바닥으로 구분하여 각각 다른 무늬를 새깁니다. 무늬 종류는 손톱ㆍ세모띠ㆍ무지개ㆍ겹톱니ㆍ문살ㆍ생선뼈 등 다양하며, 무늬의 구성도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변화ㆍ소멸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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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논밭을 갈고 마을을 가꾸다

농경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지만, 잡곡을 재배하는 밭농사였습니다. 청동기시대에 본격적인 벼농사가 이루어지면서 밭농사와 함께 중요한 생활 기반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마을 내에 무덤·생산과 저장 시설·의례 공간 등 기능에 따른 공간을 구분해서 가꾸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마을을 세우기 위해 많은 나무가 필요했고, 나무를 정교하게 가공할 여러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다듬기 위한 조갯날도끼, 자귀, 대팻날, 끌 등이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여러 목공구가 만들어지면서 나무 가공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다양한 분야의 생산력도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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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과시하다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며, 무덤 위에 큰 돌을 올려놓거나 큰 돌을 관의 뚜껑으로 사용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특히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됩니다.

창원 덕천리 고인돌은 약 50톤의 뚜껑돌[上石]과 주변에 길이 56m, 폭 17.5m의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김해 구산동 고인돌은 덕천리 유적보다 묘역은 작은 편이지만, 뚜껑돌이 약 350톤에 달하는 최대급입니다. 청동검, 간돌칼과 화살촉, 대롱옥,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이 고인돌에서 발견됩니다. 청동검이나 간돌칼은 무기로 사용하며, 가진 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11장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과시하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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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붉은간토기

붉은간토기는 그릇 표면에 산화철을 발라 잘 문지른 후에 구워 내어 붉은색 광택이 나는 토기입니다. 의례 등 특수한 목적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주로 무덤에서 확인되지만 집터에서도 출토됩니다. 일상용은 납작바닥의 바리, 항아리, 접시 등이며, 접시 등이며, 무덤의 껴묻거리용은 둥근 바닥 항아리가 대부분입니다.

12장 붉은 간토기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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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토기에 무늬를 없애고 색을 입히다

청동기시대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입니다. 토기 바닥에 편평한 굽이 붙고 바리, 대접, 접시, 항아리, 독, 굽 달린 접시, 시루 등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사용되는 토기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선무늬나 구멍무늬가 있거나, 토기 표면에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칠한 토기도 있습니다.

민무늬토기는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흙으로 빚어 한뎃가마[露天窯: 천장 구조가 없는 노출된 가마]에서 구운 토기입니다. 보통 갈색이나 적갈색 계통으로,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보입니다.

13장 토기에 무늬를 없애고 색을 입히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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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힘겹게 바위에 그림을 새기다.

암각화는 바위 표면에 새겨진 그림을 뜻합니다. 자연 바위뿐만 아니라 고인돌이나 선돌 같은 거석巨石 유구나 제단 시설에서도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있는데, 고래·멧돼지 같은 동물이나 사냥 또는 고기 잡는 그림은 풍요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의례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처럼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종교 관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최근 경남 지역의 밀양 살내·신안 유적, 의령 마쌍리 유적, 사천 본촌리 유적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둥근 무늬나 기하학적인 무늬, 간돌칼 같은 무기를 새긴 무늬가 있습니다.

14장 힘겹게 바위에 그림을 새기다.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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