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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HAE NATIONAL MUSEUM
전시가야 토기는 단단한 도질 토기와 무른 연질 토기로 나뉩니다. 도질 토기는 깊은 굴 형태의 굴가마에서 1,000℃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 매우 단단한 회청색 토기로, 저장·의례·장식용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연질 토기는 얕은 구덩이 형태의 한뎃가마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 흡수성이 뛰어나고 무른 편이며 붉은색을 띠는 토기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가야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도질 토기는 가야산 남쪽의 경상남도 일대와 호남 동쪽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그 생김새나 무늬가 매우 다양합니다. 가야 각 나라에서 만든 토기는 모양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흐르는 듯 우아한 곡선이 아름답습니다. 가야 토기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의 고대 토기인 스에키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 사람들이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의 “땅이 기름져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다.”라는 기록도 당시 가야에서 농사를 많이 지었음을 보여 줍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에서 가야 사람들이 오곡(쌀·보리·조·콩·기장)과 과일, 채소 등을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 사람들은 이 밖에 소·돼지를 비롯한 가축, 사냥한 멧돼지·사슴, 산이나 들에서 모은 밤·도토리, 강이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조개 등도 먹었습니다.
가야의 집터에는 음식을 만드는 부뚜막이 있었으며, 부엌 신(조왕신)을 모셨다는 문헌 기록으로 보아 부엌이 집 안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 토기는 밀폐된 굴가마에서 구웠습니다. 굴가마는 언덕 비탈면에 굴을 파서 만든 지하식과 비탈을 약간 파고 들어가 지상에 천장을 만든 반지하식이 있습니다. 가마는 아궁이, 땔감을 넣는 연소부, 구울 그릇을 두는 소성부, 불기운과 연기를 내보내는 연도로 이루어집니다.
가마는 점토와 연료, 물을 구하기 쉽고 구운 토기를 실어 나르기 쉬운 곳에 만들었습니다. 가야의 가마 유적은 창녕 여초리, 함안 우거리 등이 대표적이며, 고령에도 대가야 사람들이 토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있습니다.
잔 아랫부분에 흙구슬(흙으로 만든 방울알)이 들어 있어서 방울잔이라고 합니다. 먼저 구운 흙구슬을 넣어 잔을 만든 후 구웠습니다. 흔들 때마다 들리는 청아한 소리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을까요? 방울잔은 단순히 음료를 담아 마시는 용도보다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맛을 즐기는 용도로 보입니다. 또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는 방울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소리로 귀신을 쫓을 때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리와 맛을 함께 즐긴 가야인의 멋이 느껴지지 않나요?
종이를 발명하기 전 사람들은 나무나 대나무를 다듬어 종이처럼 썼습니다.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붓과 글자를 지울 때 쓰는 손칼이 나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문자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변한이 중국과 교역할 때 문자가 더욱 중요했을 것입니다.
가야 유물에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예로는 김해 양동리 유적의 청동 세발솥에 새겨진 ‘서구궁西口宮’, 합천 저포리 유적의 항아리에 새겨진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긴목항아리에 새겨진 ‘대왕大王’, 산청 하촌리 유적의 토기에 새겨진 ‘이득지二得知’ 등이 있습니다. 이런 글자들은 가야의 정치·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굽다리접시는 중국에서는 ‘두’라고 하며, 제사 그릇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얕은 접시가 긴 굽다리 위에 붙은 모습으로, 가야 토기 중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굽다리접시의 굽구멍 모양이나 무늬에 따라 가야 어느 지역에서 쓰였던 토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잔은 모양이 다양한데, 오늘날의 컵과 비슷해 ‘컵 모양 토기’라고도 합니다. 보통 둥근 통 모양 잔에 큰 손잡이가 붙어 있습니다. 굽다리잔은 굽다리 위에 입구가 넓은 잔을 붙이고, 굽다리에서 잔까지 이어지는 큰 손잡이를 달았습니다. 굽다리에 점토판을 붙이거나 작은 항아리 모양의 잔에 굽다리를 단 것도 있습니다.
한 나라로 합쳐지지 않았던 가야는 각기 자율과 공존이라는 특유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토기입니다. 가야 사람들은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한 토기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썼습니다.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뚜껑접시 등은 여러 가야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그중 굽다리접시는 가락국(금관가야)에서는 입이 바깥으로 벌어진 모양, 아라국(아라가야)에서는 불꽃무늬 구멍으로 장식한 모양, 고자국(소가야)에서는 세모난 구멍을 낸 모양으로 저마다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상형 토기는 인물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모습을 본떠 만든 토기입니다. 오리·사슴·말과 같은 동물이나 집·배·수레·뿔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생략·과장·추상화하여 만들었습니다. 몸통 속은 비어 있고 액체를 넣거나 따르도록 구멍이 나 있습니다. 무덤이나 의례 장소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상에서 썼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의 안식과 영혼의 승천 등 사후 세계에 대한 바람을 담은 의례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덤에 껴묻은 물건들은 가야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 줍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다양한 모양의 토기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토기에는 제사 음식도 넉넉하게 담았을 텐데, 굽다리접시나 항아리에 남아 있는 곡물, 씨앗, 동물 뼈 등으로 당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즉, 가야의 먹거리는 물론 음식에 담긴 의미,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하는 단서가 됩니다.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마음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다를 끼고 다른 나라와 교류하던 가야에는 외국 사람들이 많이 오가면서 다양한 문화가 들어왔습니다. 남해안 일대 뱃길을 따라 왜(일본)와 관련된 유물이 나오고, 일본에서는 가락국(대가야)의 귀걸이가 여러 곳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왜와 가야 사람들이 꾸준히 오가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특히 고대 일본의 토기인 하지키와 스에키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 많이 확인됩니다. 하지키는 적갈색 연질 토기로 항아리는 입구가 심하게 꺾여 있거나 반원 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굽다리접시는 접시 중간 부분이 꺾여 각이 져 있습니다. 스에키는 단단한 회청색 가야 토기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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