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 성 호
삼국시대 마갑의 구조와 계보
국립김해박물관
Gimhae National Musrum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김재휘 (
前 국립김해박물관)
토론문
장상갑(의병박물관)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김성호(부산대학교박물관)
토론문
박준현(합천박물관)
05
29
31
67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김혁중(국립김해박물관)
69
토론문
오광섭(울산문화재연구원)
85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하쓰무라 다케히로(공익재단법인 원흥사문화재연구소)
87
마갑총 말갑옷 복원제작 경과 소개
함안군
135
토론문
이현주(부산박물관)
131
Contents
국립김해박물관
Gimhae National Musrum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김재휘 (
前 국립김해박물관)
토론문
장상갑(의병박물관)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김성호(부산대학교박물관)
토론문
박준현(합천박물관)
05
29
31
67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김혁중(국립김해박물관)
69
토론문
오광섭(울산문화재연구원)
85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하쓰무라 다케히로(공익재단법인 원흥사문화재연구소)
87
마갑총 말갑옷 복원제작 경과 소개
함안군
135
토론문
이현주(부산박물관)
131
Contents
주제발표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김 재 휘 (前 국립김해박물관)
7
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Ⅰ. 서론
지금까지 영남지역의 찰갑연구는 부산, 함안, 합천, 고령 등을 중심으로 출토된 5세기대
의 찰갑에 집중되어 왔다. 이들 찰갑은 중장기병이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갑옷으로 다양
한 부속갑과 투구 그리고 마구가 공반되어 출토된다. 그에 비해 4세기대 찰갑자료는 5세
기대에 비해 그 출토량이 적으며, 더욱이 보존상태 역시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아 그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앞선 연구자분들은 4세기대 찰갑에 대한 여러 연구를 진행하였다. 송계현은 5
세기대 찰갑의 초기형태라는 의미에서 4세기대 찰갑을 ‘초(현)기찰갑’이라 명명하였으며,
다른 연구자들은 이러한 초기찰갑을 크게 2~3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다.(표1)
기존의 연구에서는 초기찰갑을 크게 재질에 따라 구분하였다. 소찰이 모두 철제인 찰갑
과 유기질과 철제를 혼용한 찰갑으로 각각 구분하였다. 그리고 철제찰갑을 요찰의 유무에
따라 다시 세분하기도 하였다.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초기찰갑을 2가지 형태
Ⅰ. 서론
Ⅱ. 대성동고분군 출토 찰갑 검토
1. 용어
1) 찰갑 구성
2) 소찰
3) 혁결기법
4) 중첩방향
2. 출토 찰갑 검토
Ⅲ. 대성동고분군 찰갑 구조 및 특징
1. 대성동 고분군 찰갑의 구조
1) 1식
2) 2식
2. 김해 출토 찰갑의 특징
1) Ⅱ식 찰갑의 지역성
2) 김해식 찰갑의 계통
Ⅳ. 결론
목 차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김 재 휘
前 국립김해박물관
8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연구자
鐵製札甲
鐵·有機質 혼용 찰갑
(경찰과 요찰만
鐵製)
요찰이 있는 경우
요찰이 없는 경우
송정식
(2010)
一자형 요찰을
가지는 개체
요찰을 따로
가지지 않는 개체
언급X
김혁중
(2015)
Ⅰ형
Ⅱ형
Ⅲ형
황수진
(2011)
A형 찰갑
B형 찰갑
김재우
(2010)
괘갑
찰갑
나눠서보고 있으며, 각각의 명칭을 다르게 하였다. 본고에서는 용어에 따른 혼동을 막기
위해 철제찰갑을 Ⅰ식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을 Ⅱ식 찰갑이라 하고자 한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금관가야의 고지답게 4세기대 찰갑 뿐만 아니라 5세기대 찰
갑 역시 출토되어, 영남지역의 찰갑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앞서 말한 Ⅰ식과 Ⅱ식 찰갑이 모두 확인된다. 출토된 찰갑은 총 14건으로,
그중에서 초기찰갑은 12건이다. Ⅰ식 찰갑은 4건, Ⅱ식 찰갑은 8건이다. 그 외에 5세기대
유구에서 나온 찰갑은 2건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외에도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서 Ⅱ식
찰갑 2건, 칠산동 고분군에서 Ⅰ식 찰갑이 1건 출토되었으며, 김해 여래리 고분군에서는
초기찰갑이 아닌 5세기대 고구려 찰갑이 1건 출토되었다.
표 1. 연구자별 초기찰갑 명칭분류
<도 1> 초기찰갑 Ⅰ식, Ⅱ식 찰갑 모식도 비교
9
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본고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4세기대 찰갑 연구를 김해 일원지역(대성동고분
군,양동리고분군,여래리고분군)에서 확인되는 자료를 통해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
조와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대성동고분군 출토 찰갑 검토
대성동에서 출토된 찰갑들 중 보고되지 않았거나, 출토소찰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구조
를 확인할 수 없는 찰갑은 검토에서 제외하였다. 개별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간단하게 찰
갑에 대한 용어와 명칭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용어 및 명칭정리
1) 찰갑 구성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은 그 위치와 형태에 따라 동찰, 요찰, 상찰, 상박찰, 경찰(경갑지
판) 등으로 구분된다. 우선, 동찰은 착장자의 동체부를 감싸는 소찰로 찰갑 구성비율이 가
장 높은 편이다. 요찰은 착장자의 허리를 감싸는 소찰로 그 형태가 특이한 경우가 많으며,
찰갑 계통 연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상찰은 착장자의 골반 및 대퇴부를 보
호하는 소찰이다. 주로 5세기대의 찰갑에서 확인된다. 동찰·요찰·상찰은 함께 연결되어 있
으며 이를 신갑이라 부른다. 그 외에 목을 보호하는 경갑은 주로 부속갑으로서 신갑과 별
개의 개체로 존재한다. 하지만 4세기대 찰갑에서는 신갑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갑이 아닌 경찰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2) 소찰
(1) 평면 형태
소찰은 평면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소찰의 윗변과 아랫변이 둥근 형
태인지 각진 형태인지에 따라 상원하방형, 상방하방형(장방형) 등으로 구분한다. 상원하
방형은 주로 수결1열을 사용할 때 주로 확인되는 경향이 있다.
10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2) 투공 명칭
소찰은 크게 상위, 중위, 하위, 최하단으로 구
분할 수 있다. 소찰 투공은 위치에 따라 그 쓰임
새와 명칭이 다르다. 상위에 위치한 2공1조의
투공은 수결공이라고 하며, 주로 소찰의 상하
연결에 사용된다. 중위와 하위에는 횡결공이 확
인되며, 소찰의 좌우 연결에 사용된다. 소찰의 양
변에 2공1조로 확인된다. 소찰의 최하단에는 밑
변을 따라 2~3개의 복륜공이 확인된다. 소찰의
아랫변을 혁포나 가죽끈으로 감쌀 때 사용된다.
3) 혁결기법
(1) 수결기법
수결기법은 가죽끈을 이용하여 소찰을 위아래 방향으로 연결하는 기법이다. 소찰 상위
에 위치하는 수결공에 가죽끈을 엮어서 연결한다. 수결기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
다. 우선, 상하소찰을 1열로 연속해서 연결해 나가는 ‘열 수결’이 있다. 기존에 통단위 기
법이라고도 불린다. 두 번째는 소찰을 좌우로 연결하면서 동시에 상하연결하는 방식으로
가죽대를 이용한다. 이를 ‘열단 수결’이라고 하며 철부위 기법이라고도 한다. 세 번째는 소
찰단끼리 크게 상하로 연결하는 방법으로 ‘단 수결’이라고 한다. 이는 각단위 기법이라고
도 부르지만 현재 국내에서 출토된 찰갑 중에서 해당 방법을 사용한 예시는 확인되지 않
는다.
(2) 횡결기법
횡결기법은 가죽끈을 이용하여 소찰을 좌우로 연결하는 방법을 말한다. 소찰의 중위나
<도 2> 소찰의 부분명칭
<표 2> 수결기법의 명칭비교 (김성호2019)
11
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하위 양변에 위치하는 횡결공에 가죽끈을 엮어서 소찰을 연결한다. 가죽끈을 엮는 방식에
따라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횡결 제1기법은 소찰내면에서 볼 때, 가죽끈이
'N'자 모양으로 연결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횡결 제2기법은 ‘ㄷ'자 모양으로
연결해 나간다. 횡결 제3기법은 횡결 제1기법과 유사하지만 2공1조 횡결공에서 가죽끈을
한번더 감지 않고 바로 다음 소찰로 연결해 나가는 방식이다. 횡결 제4기법은 외면에서 봤
을 때는 ’X‘자 모양이 확인되며, 내면에서 볼 때는 ’ㄷ‘자 모양이 관찰된다.
(3) 복륜기법
복륜기법은 소찰의 모서리를 가죽끈이나 혁포로 감싸는 기법을 말한다. 철제소찰은 얇
은 철판이기 때문에 모서리부분이 모두 날카롭다. 때문에 모서리 부분을 감싸 소찰로부터
착장자를 보호하고자 복륜기법을 사용한다. 복륜기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가죽끈을 이용하여 모서리를 감치듯이 감싸는 혁뉴복륜이 있다. 소찰 최하단에 위치하는
복륜공을 이용하며, 가죽끈의 모양이 사선방향으로 진행된다. 또다른 기법으로는, 소찰 모
서리를 혁포로 감싼 뒤, 복륜공에 맞춰 가죽끈으로 고정하는 혁포복륜이 있다. 가죽끈의
모양이 ‘ㅡ’자 모양으로 진행된다.
4) 중첩방향
소찰을 연결하여 찰갑을 만들 때, 우선 소찰을 좌우로 연결하여 소찰단을 만든다. 그리
고 만들어진 여러개의 소찰단들을 상하로 연결하여 찰갑을 구성한다. 소찰을 연결할 때,
소찰간의 중첩이 이루어진다. 이때 소찰들이 중첩되는 방향마다 그에 맞는 명칭이 있다.
(1) 좌우중첩
소찰을 좌우로 겹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소찰 외면을 기준으로 좌
측변에 다른 소찰을 겹쳐서 중첩해나가는 것을 좌중첩이라고 하며, 우측변에 다른 소찰을
겹쳐나가는 것을 우중첩이라고 부른다. 소찰의 좌우변 모두에 다른 소찰이 중첩된 것을
중앙중첩이라고 한다. 중앙중첩은 다시 그 방향에 따라 1식과 2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
면을 기준으로 볼 때, 1식은 중앙소찰이 가장 아래에 있으며, 소찰 양측변 위로 다른 소찰
들이 겹쳐나간다. 2식은 중앙소찰이 가장 위에 있는 형태로, 1식과 정반대이다.
(2) 상하중첩
좌우중첩을 한 소찰단을 상하로 연결하는데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외면을 기준으로
<도 3> 횡결기법의 내면(
內面)모식도 (황수진2011)
1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소찰단을 중첩할 때, 소찰단이 안쪽으로 중첩해 나가는 것을 내중식, 바깥으로 중첩해 나
가는 것을 외중식이라고 한다.
2. 출토 찰갑 검토
1) 김해 대성동 1호
대성동 1호에서는 경갑 4점과 요갑 1점이 출토되었다. 이중 경갑 1점은 상태가 좋지 않
아 보고되지 않았다. 출토정황을 미루어 볼 때, Ⅱ식 찰갑 1점과 경갑 3점이 부장된 것으
로 추정된다. Ⅱ식 찰갑의 요찰일부에서 수결기법으로 추정되는 가죽흔이 일부 확인된다.
소찰의 중앙 상위에 있는 수결공에서 열 수결의 흔적이 관찰된다. 또한 잔존한 요찰의 소
찰군을 통해 중앙중첩 1식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요찰은 총 38매가 확인되었으며,
길이 12.3~13cm, 폭은 3.2~4cm이다. 소찰 상위 중앙과 중위 중앙에 각각 1개씩 수결공
이 확인되며, 상위 양변과 중위 양변에 횡결공이 각각 1개씩 배치되어있다. 최하단 중앙에
는 복륜공이 1개 있다.
2) 김해 대성동 2호
1건의 찰갑이 출토되었으며, 3가지 유형의 소찰이 확인된다. 기존 연구에서는 요찰이
있는 찰갑으로 보았지만, 본고에서는 해당 소찰이 요찰이 아닌 경찰로 보고자 한다. 해당
소찰은 종단면에 곡률이 확인된고, 투공배치도 다른 유구 요찰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
고 있다. 해당 소찰은 경찰 중에서도 우측 개폐부 끝에 위치하는 소찰로 판단된다(도6). 특
히 소찰의 우측변을 따라 투공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확인되는데, 이는 복륜을 위해 뚫어
놓은 복륜공으로 보인다.
<도 4> 소찰의 좌우중첩방식
<도 5> 소찰의 상하중첩방식(
淸水和明 1996)
(
左-외중식,右-내중식)
13
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그 외에 철제찰갑의 동찰로 추정되는 소찰이 확인된다. 길이 10.5cm, 폭 2.2~2.7cm로
세장한 형태이며 대형의 소찰이다. 상원하방형으로 소찰 상위 중앙에는 2공1조의 수결공
이 확인되며, 중위 양옆으로 혁결공이 관찰된다. 소찰 최하단에는 복륜공이 중앙에 1개 관
찰된다. 정확한 수량은 보고되지 않았지만, 그 형태와 투공배치를 미루어 보아 동찰로 추
정된다. 그리고 길이 4.5cm, 폭 1.6~2.1cm로 소형 소찰이 13매정도 보고되었다. 하단으
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투공의 배치는 1형식과 같다. 상박찰로 추정된다.
소찰은 총 3가지로 경찰, 동찰, 상박찰이 있다. 대성동 2호에서 출토된 찰갑은 철제소찰
로 이루어진 찰갑으로 Ⅰ식 찰갑에 해당된다.
3) 김해 대성동 3호 주곽
주곽에서 확인된 1점의 찰갑은 철제소찰로 구성된 Ⅰ식 찰갑이며, 1개 유형의 소찰
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대성동 3호 주곽의 찰갑은 대성동 2호의 찰갑처럼 출
토량에 비해 보고된 수량이 적기 때문에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소찰은 대부분
상원하방형으로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우선 신갑을 구성하는 동찰이 확인된다. 길이
10cm, 폭 4.5cm이며, 상위 중앙에 2공 1조의 수결공이 있으며, 중위와 하위 양쪽에 2공1
조의 횡결공이 확인된다. 최하단 중앙에 복륜공 1개가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 길이 5.4~5.8cm, 폭 2.6~3cm의 상박찰이 확인된다. 총 3매가 확인되며, 상위
중앙에 2공 1조의 수결공이 상하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중위의 양쪽에 2공 1조의 횡결
공이 각각 위치한다. 최하단의 중앙에는 복륜공이 1개 있다.
4) 김해 대성동 3호 부곽
부곽에서는 2점의 찰갑이 출토되었으며, 모두 Ⅱ식 찰갑이다. 대성동 1호에서 출토된
Ⅱ식찰갑과 같은 형태로 추정된다. 찰갑A에 있는 요찰은 대성동 1호 요찰과 같은 투공배
치를 가지고 있으며, 총 37매가 잔존한다. 경찰은 정후방지판은 2매이상으로 추정되며, 상
<도 6>. 대성동 2호 출토 요찰의 본래 위치
1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단의 형태는 직선이다. 지판의 수량은 20매 이상이다. 투공의 배치는 최상단에 좌우일렬
로 2공 1조의 복륜공이 있으며 상위와 하위의 양쪽에 2공 1조의 횡결공이 각각 위치한다.
최하단의 중앙에는 1개의 복륜공이 있다. 중첩양상은 중앙중첩 1식에 해당된다.
찰갑B의 요찰은 총 19매가 잔존한다. 투공의 위치는 최상단에 2공 1조의 상하일렬 투
공이 좌우 그리고 중앙에 각각 위치하며, 상위와 중위의 양쪽에는 횡결공이 각각 1개씩 확
인된다. 중위의 중앙에는 투공이 1개 배치되어 있으며, 최하단의 중앙에는 복륜공이 1개
있다. 전체적으로 찰갑A 요찰의 투공배치가 유사하지만 최상단의 2공3조의 배치가 서로
다르다. 중첩양상 역시 찰갑A 요찰과 마찬가지로 좌중첩에 해당된다. 경찰은 정후방지판
의 형태는 알 수 없다. 각 지판마다 상단을 따라서 복륜공이 3개 이상씩 배치되어 있다. 최
하단에는 복륜공이 2개씩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첩양상은 중앙중첩 1식으로 추정된다.
5) 김해 대성동 7호
대성동 7호는 아직 보고되지 않아 정확한 양상은 파악하기 힘들지만, 일부 공개된 도면
을 보았을 때, 요찰로 추정되는 소찰이 확인된다. 소찰의 투공배치로 볼 때, 앞의 대성동 1
호와 3호의 것과 같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대성동 7호의 찰갑은 대성동 1호와 3호에서 출
토된 상반신찰갑처럼 동체부가 유기질제 소찰로 구성된 Ⅱ식 찰갑으로 추정된다.
6) 김해 대성동 39호
39호분은 경찰 1령만 보고되었으며, 요찰은 보고되지 않아 정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 없
다. 다만, 해당유구의 발굴도면에서 확인되는 찰갑 출토양상을 볼 때, 경찰과 요찰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확인된다. 이는 앞의 대성동 1호와 같은 양상이다. 대성동 39호 찰갑
은 철제의 경찰과 요찰로 구성된 Ⅱ식 찰갑으로 추정된다.
7) 김해 대성동 57호
총 6점의 요찰이 좌중첩된 채로 출토되었다. 평면형태는 상원하방형이며, 단면형태는
약하게 곡률을 가진다. 길이는 12cm, 폭은 5.4cm이며, 투공의 배치는 최상단의 중앙에 수
결공이 1개 있으며, 상위와 중위의 좌우에 각각 횡결공이 1개씩 배치된다. 중위의 중앙에
1개의 투공이 있으며, 최하단의 중앙에 복륜공이 1개 관찰된다. 대성동 1호와 같은 형태
의 요찰이다.
대성동 57호 출토 요찰의 투공배치가 대성동 1호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아, 대성동 1호
의 찰갑처럼 유기질제의 소찰과 철제의 요찰로 구성된 찰갑으로 추정된다.
15
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8) 김해 대성동 68호
1개 유형의 소찰만 확인된다. 상단의 중앙에 종으로 2공1조의 수결공이 있으며, 상위와
하위 좌우변에 각각 2공1조의 횡결공이 위치한다. 최하단에는 2공1조의 복륜공이 횡으로
있다. 소찰은 길이 9.5cm, 폭 3.4~3.9cm전후이다. 중첩양상은 좌중첩과 우중첩이 모두
확인되지만, 중앙중첩은 관찰되지 않는다.
68호분에서 출토된 찰갑의 형태는 현재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보고서에서는 출토
소찰을 요찰로 파악하였으며, 2령이상의 요찰(찰갑)이 출토되어 서로 덮여진 것이라 추측
하였다. 그에 반해 김병호1)는 찰갑의 출토상황을 근거로 하여 요찰이 아닌 1령의 괘갑2)으
로 파악하였다. 또한 대성동 68호분에서 출토된 찰갑의 형식이 경산 조영 1B-60호와 부
산 복천동 38호 출토 찰갑처럼 경찰이 공반되지 않는다는 점을 특징으로 보았으며, 이는
대성동 68호의 위계가 낮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대성동 68호 출토 소찰 중 4개의 소찰단(
小札段)이 잔존한 소찰군이 있다. 해당 소찰군
의 단면을 통해서 각 단의 좌우 중첩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총 4단 중에서 최상단, 3번째
단, 4번째단은 우중첩이며, 2번째단만 좌중첩이다. 모든 단이 같은 중첩양상을 하지 않는
복합양상으로 추정되며, 이는 동체부를 감싸는 1점의 철제 찰갑으로 추정된다. 최소 3단
이상으로 이루어진 찰갑으로 보이며,Ⅰ식 찰갑으로 추정된다.
9) 김해 대성동 70호 (주곽)
3개의 소찰군이 출토되었으며, 각각 가,나,다군으로 구별되어 보고되었다. 우선, 가군은
많은 양의 소찰이 수착되어 있기에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수착된 소찰들 대부분 동찰
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에도 4개 유형의 소찰이 더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형
태를 알기 어렵다. 외중식의 상하중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나군에서는 최소 8매 이상의 경찰편이 상부에서 확인된다. 일부 주칠흔적도 확인된다.
소찰의 종류와 수량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대부분 동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찰
단이 최소 10~1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중첩이 주로 확인되며 온전한 소찰은 관찰되지
않는다. 가군과 마찬가지로 상하중첩은 외중식으로 추정된다.
다군은 다른 소찰군에 비해 소찰의 수가 적으며, 마찬가지로 정확한 소찰의 형태를 파
악할 수 없다.
1) 김병호, 2017, 「최근 대성동 출토 갑주와 변화양상」, 『金海 大成洞古墳群 -추가보고 및 종합고
찰-』, 대성동고분박물관 고찰. (159~165 p.g)
2) 김병호는 김재우(2010)의 의견에 따라, 철제소찰로만 이루어진 찰갑을 괘갑(掛甲)이라 명칭하
였다. 김병호, 2017, 上揭書
1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소찰군에서 상하중첩이 확인된다는 점, 그리고 최소 2가지 이상의 소찰로 구성되었다
는 점을 미루어 보아 철제의 소찰로 구성된 Ⅰ식 찰갑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찰갑에는 경
찰이 함께 부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0) 김해 대성동 90호
경갑 1점과 찰갑 1점이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결실되어 일부만 잔존하였지
만, 일부 소찰을 통해 대략적인 형태를 추측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다른 대성동 출토
찰갑과는 다르게 5세기대의 ‘S’자형 요찰이 출토되었다. 이는 90호분의 찰갑은 앞에서 설
명한 Ⅰ,Ⅱ식 찰갑에 속하는 것이 아닌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기마용 찰갑이다. 또한 부속
갑으로 경갑과 상박갑이 출토되어 이를 뒷받침한다.
11) 김해 대성동 93호
경갑 1점과 찰갑 1점이 출토되었다. 경갑은 5점의 소찰 잔존해 있으며, 종단면은 강하
게 외반되어 있다. 모두 일부만 잔존하여 정확한 형태와 양상을 파악할 수는 없다. 찰갑 소
찰은 총 35점이 잔존하며, 모두 같은 형태의 소찰로 추측된다. 소찰의 최상단과 최하단에
복륜공으로 추측되는 2공 1조의 투공이 단변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횡결공은 2공 1조로
소찰의 상위와 하위 양변에 각각 위치하며, 중위에는 3개의 수결공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
다. 이러한 투공배치를 보이는 소찰은 대성동에서 발견된 적이 없으며, 기존의 소찰들과
궤를 달리한다. 다만, 복천동 38호 출토 찰갑의 요찰과 투공배치가 똑같다. 복천동 38호
찰갑은 철제소찰로 이루어진 찰갑으로 Ⅰ식 찰갑에 속한다. 그러므로 93호 출토 찰갑 역
시 Ⅰ식 찰갑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Ⅲ. 대성동고분군 찰갑 구조 및 특징
1. 대성동 고분군 찰갑의 구조
앞서 살펴본 대성동고분군 출토 찰갑을 검토해 보았을 때, 소찰의 재질과 구성에 따라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의 재질이 모두 철제인 Ⅰ식과 유기질
제와 철제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Ⅱ식으로 대성동 고분군 찰갑은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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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1) Ⅰ식
Ⅰ식 찰갑은 대성동 2호·3호(주곽)·68호·70호·93호에서 출토되었다. 대성동 3호(주곽)
와 68호에서 출토된 소찰의 투공배치가 서로 같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또한 대부분 출토상태 역시 좋지 않아 정확한 형태를 유추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
성동에서 출토된 Ⅰ식 찰갑 외에 김해 칠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칠산동 35호 출토 찰갑
을 예시로설명하고자 한다. 칠산동 35호 찰갑을 바탕으로 하여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Ⅰ식 찰갑의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김해 칠산동 35호 출토 찰갑은 부장된 상태 그대로 내려앉은 채 출토되었다. 때문에 다
른 찰갑에 비해 그 형태를 유추하기 용이하다. 총 4개 유형의 소찰로 구성되었으며, 요찰
은 확인되지 않는다. 총 6~7단의 소찰단이 외중식으로 상하 중첩되었으며, 각 단마다 40
매 소찰로 제작되었다. 총 250매 내외의 소찰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후
경판으로 추정되는 소찰이 1매 확인되었으며, 동찰은 일반적인 동찰과 최상단 동찰의 투
공배치가 다르다. 좌우 중첩은 모두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중앙중첩이 있는 것으로 추정
되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 혹은 같은 소찰단 내에서 좌중첩
과 우중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찰단 마다 좌우 중첩을 달리 했을 가능성이 있다(사진1).
대성동 68호 찰갑에서도 각단마다 서로 다른 중첩양상을 보이는 소찰군이 확인되었던 만
큼 칠산동 35호 찰갑 역시 소찰단마다 좌우중첩이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칠산동 35호분 출토 찰갑 양상을 바탕으로 볼 때, Ⅰ식 찰갑은 횡으로 소찰들을 우선 연
<도 7> 김해 칠산동 35호 출토 찰갑 및 소찰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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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결하고 이후 상하로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소찰을 횡결
하여 소찰단을 만든 뒤, 이러
한 작업을 반복하여 착장자의
몸에 맞춰 일정 개수의 소찰
단을 제작한다. 그리고 소찰
단의 상하연결은 바깥으로 중
첩해 나가는 외중식(
外重式)
을 기본으로 한다. 찰갑의 좌우
중첩은 중앙중첩이 이루어졌을 경우, 등부분(
背部) 혹은 옆구리부분(脇部)에서 중앙중첩했
을 가능성이 있다.3) 하지만 소찰단마다 좌우중첩을 달리하여 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2) Ⅱ식
Ⅱ식 찰갑은 대성동 1호, 2호, 7호, 39호, 57호에서 확인된다. Ⅱ식 찰갑의 구성은 철제
경찰과 요찰, 그리고 유기질제 소찰로 구성되어 있다. 경찰의 형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
만, 요찰의 경우 모두 같은 형태의 소찰을 사용하고 있다. 해당 소찰은 상원하방형이며, 투
공배치가 일반적인 동찰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소찰은 2공1조의 수결공 혹은 횡결공을 가
지는데 반해, 해당 요찰은 상위와 중위에 수결공과 횡결공이 멀찍이 떨어진 채 확인된다.
해당 요찰은 대성동고분군뿐만 아니라 김해 양동리 107호에서도 확인된다. 양동리 107호
찰갑은 대성동 1호와 마찬가지로 경찰과 요찰이 확인되었으며, 요찰은 총 34매가 확인된
다. 또한 요찰의 투공배치 역시 대성동에서 나오는 요찰과 같다. 그러므로 김해지역에서
3) 김해에서 출토된 사례는 아니지만 4세기대 Ⅰ식 찰갑으로 보이는 울산 하삼정 26호, 포항 마산
리 목곽 2호 출토품을 볼 때, 옆구리에서 중앙중첩이 확인된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김해의
Ⅰ식 찰갑에서도 협부를 중심으로 중앙중첩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 1> 칠산동 35호 소찰 중첩
<도 8> 김해식 요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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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특징적으로 출토되는 해당 요찰을 ‘김해식 요찰’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김해식 요찰은 수
결공과 횡결공의 배치가 일반적이지 않아 혁결기법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보고된 부산 복천동 44호분에서 출토 찰갑에서 김해식 요찰과 같은 형태
의 요찰이 출토되었다. 복천동 44호분 출토 찰갑은 가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여, 혁결기
법을 파악할 수 있다. 요찰 상위와 중위의 중앙에 각각 1개씩 위치하는 수결공에서는 열
수결이 확인되며, 상위와 중위 양변에 각각 1개씩 배치된 횡결공에서는 횡결 제4기법(X
자 횡결)이 관찰된다. 이를 통해 김해에서 확인되는 요찰 역시 열 수결과 횡결 제4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44호분 출토 찰갑에서는 요찰의 혁결기법 외에도 유기질제 상찰의 존재가 확인
되었다. 유기질제 상찰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Ⅱ식 찰갑 구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
할 수 있게 되었다. Ⅱ식 찰갑은 (철제)경찰·(유기질제)동찰·(철제)요찰·(유기질제)상찰로
구성되며, 기존의 통념과는 다르게 상찰이 요찰 아래에 부착되었다. 기존의 출토품에서는
상찰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나 복천동 44호 출토품을 통해 요찰 아래쪽으로 상찰이 외중
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기질제 동찰과 상찰의 소찰형태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
으며, 어떤 혁결기법이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김해의 Ⅱ식 찰갑은 김해식 요찰을 사용한다는 공통점 외에도 모두 좌중첩한다는 공통
점을 가지고 있다. 소찰 1매밖에 확인되지 않는 대성동 7호분과 대성동 1호분의 요찰을
제외한 모든 김해 출토 요찰들은 좌우중첩이 좌중첩으로 되어 있다. 요찰이 모두 좌중첩
인 것으로 볼 때, 유기질제인 동찰과 상찰 역시 좌중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
성동 1호분의 요찰은 특이하게도 중앙중첩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에서 출토되는 Ⅱ식 찰갑은 철제 소찰과 유기질제 소찰이 혼용하였으며, 요찰은 김
해식 요찰을 사용한다. 그리고 요찰의 제작기법을 볼 때, 동찰·요찰·상찰은 좌우연결을 좌
중첩하였으며, 횡결 제4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상하연결은 열 수결을 사용하여 외중
식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2. 김해 출토 찰갑의 특징
1) Ⅱ식 찰갑의 지역성
김해에서 출토된 찰갑은 크게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제소찰만으로 이루어
졌으나 형태상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Ⅰ식 찰갑’ 그리고 철제와 유기질제가 혼용되어
사용되었으며, 좌중첩된 김해식 요찰을 사용하는 ‘Ⅱ식 찰갑’이 그것이다. 이러한 찰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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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대성동 뿐만 아니라 김해 양동리고분군 107호와 부산 복천동고분군 44호에서도 확인된
다. 이러한 Ⅱ식 찰갑은 김해를 중심으로 출토되므로 ‘김해식 찰갑’으로 보고자 한다.
이러한 김해식 찰갑과 다른 형태의 Ⅱ식 찰갑이 경주 구어리 1호와 포항 남성리 Ⅱ지구
17호의 예와 같이 다른 지역에서 확인된다(도9). 이들 찰갑은 김해식 찰갑처럼 유기질제
혼용 찰갑이다. 다만, 김해식 요찰과 조금 다른 유형의 투공배치를 보이는 소찰을 사용하
였으며, 좌중첩되어 있는 김해식과는 달리 중앙중첩 2식을 사용하여 소찰을 혁결하였다.
구어리 1호와 남성리 Ⅱ지구 17호에서 출토된 찰갑의 요찰은 김해식 요찰에서 투공이 2
개 더 많다. 소찰의 상위 중앙에 2개의 수결공으로 추정되는 투공이 배치되어 있다. 그 외
에 횡결공과 복륜공의 위치는 같으며, 종단면에 곡률이 있는 것도 같다. 횡결공의 배치가
같은 것으로 보아 김해식처럼 횡결 제4기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수결기법 역시
열 수결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해식 요찰의 열 수결보다 복잡한 기법을 사용했
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찰갑 양식은 김해식 찰갑처럼 Ⅱ식 찰갑 형태를 띄지만, 세부적
인 요소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찰갑 양식이 경주권역(경주 구어리고분군, 포항 남성
리고분군)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경주식’ 이라 볼 수 있지만, 아직 출토예가 2점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적 특징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2) 김해식 찰갑의 계통
김해식 찰갑의 특징은 크게 3가지이다. 첫 번째, Ⅱ식 찰갑이다. 경찰과 요찰은 철제이
며, 동찰과 상찰은 유기질제이다. 두 번째, 김해식 요찰을 사용한다. 철제 요찰의 평면형태
는 상원하방형이며, 투공배치는 모두 동일하다. 수결공은 소찰의 상위와 중위 중앙에 1개
씩 있으며, 횡결공은 상위와 중위 양변에 각각 1개씩 배치되어 있다. 복륜공은 소찰 최하
단 중앙에 1개 있다. 그리고 종단면에 완만한 곡률이 관찰된다. 세 번째, 김해식 요찰은 횡
결 제4기법을 사용하여, 좌중첩하였다. 대성동에서 출토된 김해식 요찰에서는 횡결기법의
<도 9> Ⅱ식 찰갑의 지역적 경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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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김해식 요찰을 사용하는 부산 복천동 44호 요찰에서 횡결의 흔적
을 찾을 수 있었다. 횡결 제4기법은 소찰외면에 ‘X’자 형태의 가죽끈이 보여지고, 내면에
는 ‘ㄷ’자 형태가 나타난다. 주로 경갑에서 많이 보이는 혁결기법이다.
이러한 김해식 찰갑은 김해 대성동고분군, 김해 양동리고분군, 부산 복천동고분군에서
확인된다. 그 중 김해 양동리 Ⅳ지구 1호분에서 출토된 찰갑은 Ⅱ식 찰갑이지만 김해식 요
찰을 사용하지 않는다. 김해식 요찰을 사용하지 않을 뿐 요찰에 횡결 제4기법과 유사한 횡
결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좌중첩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동리 Ⅳ지구 1호분의 요찰은 상원
하방형이며, 종단면에 곡률이
있다. 소찰 상위 중앙에 2공1
조의 투공이 있으며, 중위에
는 2공3조의 투공이 나란히 배
치되어 있다. 그리고 최하단에
는 복륜공이 1개 있다. 양동리
Ⅳ지구 1호분의 시기는 4세기
3/4분기로 김해에서 출토된
Ⅱ식 찰갑 중 가장 시기가 빠
르다. 대성동에서 출토된 Ⅱ식
찰갑은 대부분 4세기 4/4분기
혹은 5세기 1/4분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양동리 Ⅳ지구 1호분의 찰갑은 대성동의 김해
식 찰갑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시기적으로 빠른 것으로 보아 김해식 찰갑의 시원형으로
볼 수 있다.
김해지역의 찰갑 중 김해 여래리 Ⅱ지구 40호에서 출토된 찰갑은 5세기 1/4분기에 해
당하며, 고구려계 기마용 찰갑과 유사하다. 기존 여래리 찰갑은 경갑과 상박갑을 부속갑
으로 가지며, 동찰과 요찰 그리고 1단의 상찰로 신갑이 구성되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최
근 요찰과 1단짜리 상찰 사이에 유기질제 상찰이 연결되어져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
다. 즉, 김해 여래리 찰갑은 김해식 찰갑과 다른 형태의 유기질제 혼용 찰갑이다(도10). 여
래리 찰갑은 김해식 찰갑과 다르게 목을 감싸는 경갑과 부속갑이 따로 존재하며, 요찰은
김해식 요찰이 아닌 단면‘く’자형 요찰이다. 종단면이 한번 꺾인 'V‘자 형태로 영남지역에
서 유일하게 확인된다. 해당 소찰은 아차산 제4보루에서 출토된 찰갑에서 그 출토예를 찾
을 수 있으며, 그 시기는 5세기 후엽에 해당된다. 정확한 선후관계는 향후 검증이 더 필요
하지만, 여래리 찰갑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여래리 찰갑
은 유기질제 소찰 사용을 전통으로 하는 김해식 찰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
려식 기마용 찰갑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의 요찰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경찰은 신갑
<도 10> 김해 여래리 Ⅱ지구 40호 찰갑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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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에 붙어있는 지판이 아닌 독립적인 부속갑으로 사용된다.
김해지역의 찰갑은 대성동의 김해식 찰갑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도11). 양동리 Ⅳ
지구 1호분 찰갑은 김해식 찰갑의 시원형으로 파악되며, 여래리 Ⅱ지구 40호분 찰갑은 김
해식 찰갑이 외부 영향을 받아 변화한 형태로 보인다. 이러한 계통은 유기질제 소찰을 사
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으로 이어지며, 그 외에도 김해식 요찰과 횡결 제4기법이라
는 요소가 부분적인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양동리 Ⅳ지구 1호분 찰갑은 Ⅱ식 찰갑이며, 횡결 제4기법을 사용하여 요찰을 혁결하였
다. 유구는 4세기 3/4분기에 해당하며, 김해에서 출토된 Ⅱ식 찰갑 중 가장 이른시기에 해
당한다. 이후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김해식 찰갑이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대성동 고분
군에서 출토되는 Ⅱ식 찰갑은 김해식 요찰을 대부분 사용하였으며, 횡결 제4기법을 이용
하였다. 양동리 Ⅳ지구 1호분과 굉장히 흡사한 형태를 띈다. 양동리 Ⅳ지구 1호분 찰갑에
후속하는 형식으로 추측된다. 대성동에서 김해식 찰갑이 출토되는 시기에 양동리 107호
분과 부산 복천동 44호분에서도 김해식 찰갑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대성동고분군을 중
심으로 김해·부산지역에서 넓게 부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5세기 1/4분기에 접어들면서
김해지역에 고구려식 기마용 찰갑의 영향을 받은 찰갑이 부장되기 시작한다. 대성동 90호
분에서는 'S'자형 요찰이 출토되며, 김해 여래리 Ⅱ지구 40호분에서는 ‘く’자형 요찰이 확
인된다. 여래리 Ⅱ지구 40호분 찰갑은 고구려계 요찰과 유기질제 상찰을 동시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김해식 찰갑의 유기질제 소찰을 사용하는 요소와 고구려계 기마용찰
갑의 요소가 혼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도 11> 김해 Ⅱ식 찰갑 변화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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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Ⅳ. 결론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은 크게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Ⅰ식 찰
갑은 소찰 전체가 철제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공통점을 가지지 않는다.
Ⅱ식 찰갑은 ‘김해식 찰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지역성을 나타낸다. 김해식 찰
갑은 유기질제 혼용 찰갑으로 경찰과 요찰은 철제이며, 동찰과 상찰은 유기질제이다. 요
찰은 김해식 요찰을 사용하고 있으며, 횡결 제4기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Ⅱ식 찰갑은 양동
리-대성동-여래리로 변화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대성동고분군의 찰갑은 그 변화
의 중심에 있다.
본고를 통해서 대성동고분군의 찰갑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나, 이는 단순
히 찰갑의 생김새와 변화양상에 대해서 설명했을 뿐, 각 소찰의 기능이나 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특히, 요찰은 동찰과 상찰에 비해 형태가 특이하여
찰갑계통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으나, 정확한 기능을 알지 못했다. 앞으로 다양한
자료추가를 통해 찰갑의 변화원인과 소찰들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보다 정확한
찰갑 복원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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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 12> 김해 대성동 1호분 출토 찰갑
<도 14> 김해 대성동 3호분 출토 찰갑
<도 13> 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찰갑
<도 15> 김해 대성동 7호·39호·57호 출토 소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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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도 16> 김해 대성동 68호 출토 찰갑
<도 18> 김해 대성동 90호 출토 찰갑
<도 20> 김해 양동리 Ⅳ지구 1호 출토 찰갑
<도 17> 김해 대성동 70호(주곽) 출토 찰갑
<도 19> 김해 대성동 93호 출토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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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 21> 김해 양동리 107호 출토 찰갑
<도 23> 경주 구어리 1호 출토 요찰
<도 22> 포항 남성리 Ⅱ지구 17호 목곽묘 출토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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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휘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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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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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에 대한 토론문_장상갑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특징
」에 대한 토론문
장 상 갑
의병박물관
찰갑은 가죽끈으로 소찰을 엮어 유동성을 확보하여 실전에서 중장기마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갑옷으로 인식되고 있다. 철제 갑주의 출현은 4세기대에 들어서 가야 정치체의 성
장과 함께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비롯한 영남의 주요 고분에서 확인된다. 또한 유기질제
갑주와 비교되는 철제 갑주의 방어력 증대는 공격용 무기의 기능 개량과 상호 연동하여
가야의 무장체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찰갑은 기승용 마구의 도입과
함께 실용적인 갑주로서 여러 연구자가 일찍부터 주목하였다.
더욱이 최근에는 양호한 상태의 출현기 찰갑이 확인되면서 면밀한 관찰을 통하여 구
조 복원이 시도되고 있다. 이번 발표 역시 금관가야의 중심묘역에서 출토된 찰갑의 구조
적인 특징을 규명한 최신의 연구 성과이다. 특히 철제 경찰과 요찰이 유기질제 소찰과 혼
용된 Ⅱ식 찰갑 가운데 김해지역에서 공통성을 보이는 형식은 주목할 만 하다. 자료적 제
약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의 소찰로 구성된 찰갑의 구조를 복원한 발표자의 연구는 가
야 무장의 거시적인 변화에 치중하였던 토론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가야 찰갑에 대한
보다 완성된 연구를 위하여 약간의 질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1. 4세기대 찰갑의 요찰과 관련하여 발표자가 전고에서 주목한 ‘도련찰’에 대한 보충
설명을 먼저 부탁드린다. 5세기대 전형적인 찰갑의 요찰과 대비되는 4세기대 완만한 곡률
의 요찰을 도련찰로 파악하여 상반신찰갑의 구조를 복원한 연구는 참신한 의미를 가졌다
고 생각된다. 다만, 유기질제 상찰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 부산 복천동 44호분 출토 찰갑
을 염두에 두었는지, 이번 발표에서는 전고의 견해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잔존상태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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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호하지 못한 자료적 한계로 인해 아직 4세기대 찰갑에 대한 복원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
에서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Ⅱ식 찰갑 가운데 유기질제 동찰이나 상
찰의 존재를 일반화시킬 수 있는지 발표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2. 발표자가 대성동 고분군 출토 찰갑을 통해 주목한 ‘김해식 요찰’로 설정한 소찰의
투공 구조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찰의 상단에 2공1조의 수결공을 가지
는 일반적인 요찰에 비해 김해식 요찰은 상위와 중위에 수결공이 하나씩 떨어져 있다. 대
성동 고분군의 Ⅱ식 찰갑에서 공통되는 구조로 열 수결로 상하를 연결하여 외중식으로 제
작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유기질제로 제작된 동찰과 상찰의 형태가 명확하지 않아 상하
연결기법 복원에 한계가 있으나, 상단에 2공1조의 수결공이 있는 양동리 Ⅳ지구 1호분,
여래리 Ⅱ지구 40호분 요찰과는 차이가 있으며, 동시기 경주지역의 Ⅱ식 찰갑과도 다른
구조이다. 유기질제 동찰이나 상찰과의 연결기법은 어떠하였는지? 상하의 유동성 확보는
가능한지? 보충 설명을 부탁드린다.
3. 이번 발표에서 주목한 김해식 찰갑을 비롯한 Ⅱ식 찰갑의 구조를 조금 더 구체적으
로 살펴보았으면 한다. 유기질제 동찰은 수결기법으로 상하 유동성이 확보된 구조인지,
아니면 소찰의 상하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어떠한 모습의 동체 구조를 하였는지 궁금하
다. 현재까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출토된 Ⅱ식 찰갑은 바닥에 펼쳐진 상태로 철제의 경
찰과 요찰이 잔존하고 있다. 다른 Ⅰ식 찰갑은 횡결된 소찰단이 상하로 누중되어 수착된
상태로 출토되는데 Ⅱ식 찰갑의 동찰은 수결로 제작된 Ⅰ식 찰갑과 다른 구조일 가능성은
없는지? 발표자가 설정한 Ⅰ식과 Ⅱ식 찰갑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4. 마지막으로 대성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지역성을 보이는 Ⅱ식 찰갑 가운데 발표자
가 설정한 김해식 찰갑의 계통문제이다. 김해식 찰갑은 양동리 Ⅳ지구 1호분 출토 찰갑
을 시원형으로 4세기 4/4분기 이후에 정형화되는 양상이다. 5세기대 이후의 고구려계 기
마용 찰갑과 대비되는 재지의 토착계 찰갑으로 이해된다. 다만,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품을 비롯한 영남지역 출현기의 찰갑과 비교하여 김해식 찰갑의 계통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재지의 유기질제 찰갑에 철제의 경찰과 요찰이 채용된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도입
된 Ⅰ식 찰갑의 경량화 혹은 다른 기능적인 이유로 동찰이 유기질제로 전환되었는지? 그
리고 이러한 찰갑이 김해를 중심으로 가야지역에서 어떠한 변화를 반영하는지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주제발표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김 성 호 (부산대학교박물관)
33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Ⅰ. 머리말
삼국시대의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갑옷인 찰갑(
札甲)은 수 백매의 소찰(小札)을 좌우,
상하로 연결하여 만들어진다. 각 소찰의 두께는 1~2㎜로 매우 얇지만 일정 간격으로 중첩
되기 때문에 두께에 비해 방어력이 뛰어나다. 판갑을 구성하는 지판과는 달리 찰갑은 비
교적 크기가 작은 소찰들을 연결하여 제작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유연하며 소찰 간 유동
성도 있어 활동성도 좋은 갑옷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소찰 간 유동성은 방어력 향상에도 도
움을 주는데, 무기로부터의 충격이 소찰 간 유동성을 통해 흡수되기 때문이다.
찰갑은 제작과 유지·보수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뛰어난 갑옷이다. 판갑의 경우 각 부
위별로 지판의 곡률을 맞추어야하는 등 제작이 비교적 까다롭다. 또 전동부 지판이 후동
부 지판으로 대체될 수 없는 등 유지·보수도 쉽지 않다. 반면 찰갑은 동일한 형태의 대체로
곡률이 없는 소찰을 수 십, 수 백매 사용하기 때문에 제작 난이도가 높지 않다. 소찰들을
연결하는 작업도 병(
鋲)을 사용하여 리벳(Rivet)하는 판갑과는 달리 매우 간단하다. 이 때
문에 유지·보수도 판갑에 비해 용이하다.
Ⅰ. 머리말
Ⅱ. 찰갑 제작기법과 구조복원의 방법
1. 제작기법
2. 구조복원의 방법과 가설설정
Ⅲ. 4세기대 찰갑의 구조와 특징
1. 구조복원
2. 특징
Ⅳ. 5세기대 찰갑의 구조와 특징
1. 구조복원
2. 특징
Ⅴ. 맺음말
목 차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김 성 호
부산대학교박물관
3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한반도에서는 기원전부터 찰갑이 확인되기 시작하지만 본격적으로 철제 찰갑이 사용
되는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특히 영남지역의 고분을 중심으로 다수가 출토되었다. 출토
사례가 많은 만큼 연구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1). 다만 수 백매의 소찰들을 연결하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출토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자료들은 찰갑 연구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쪽샘 C10호묘 출토 찰갑 등 출토상태가 양호
한 자료들의 복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 역시 찰갑 복원을 위한
자리인 것으로 생각된다.
본 발표에서는 찰갑 복원을 위하여 동래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의 구조복원을
시도하였다. 현재까지 보고된 자료를 중심으로 소찰과 출토상태 등을 검토하였고 이를 토
대로 전개모식도를 제시하였다. 전개도 작성 후 찰갑의 구조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3D
모델링을 실시하였다.
1) 영남지역 찰갑을 집성하여 연구한 최근의 연구로는 황수진(2011), 김혁중(2018), 김재휘(2019)
의 논고가 대표적이다.
35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Ⅱ. 찰갑 제작기법과 구조복원의 방법
1. 제작기법과 부장양상
찰갑은 수 백매의 소찰들이 상하, 좌우로 연결되어 완성된다. 연결은 유기질제 끈으로
이루어 진다2). 끈을 연결하기 위하여 소찰의 가장자리 혹은 중앙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
는데 이를 ‘투공(
透孔)’이라고 한다. 투공은 용도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상하를 연결하는
데에 사용하는 투공은 ‘수결공(
垂結孔)’, 좌우를 연결하는 데에 사용하는 투공은 ‘횡결공
(
橫結孔)’, 좌우를 연결하며 소찰 가장자리를 감싸는 투공은 ‘고정·복륜공(固定·覆輪孔)’
이라 한다. 찰갑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결공은 소찰 상위 중앙에 1열 혹은 좌·우변을 따라 2
열로 배치되고, 횡결공은 소찰 좌·우변을 따라 1단 혹은 2단으로 배치된다. 본고에서는 투공
을 기능별로 <표 1>과 같이 표시하여 구분한다.
소찰은 좌우와 상하로 중첩시켜 연결한다. 좌우로는 횡결공을 겹쳐 연결한다. 투공이
겹쳐지므로, 소찰 좌우간 유동성은 없다. 좌우 연결시, 좌측의 소찰이 우측의 소찰 위로 연
결되는 경우 좌중첩(
左重疊), 반대로 우측의 소찰이 위로 연결되는 경우 우중첩(右重疊)
이라 한다. 또 기준이 되는 소찰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되게 중첩되는 방식이 있다. 기준이
되는 소찰이 가장 위로 중첩되는 것은 중앙상중첩(
中央上重疊), 반대의 경우 중앙하중첩
(
中央下重疊)이라 한다. 상하 연결 시, 하단의 소찰 단이 상단 위로 중첩되는 경우 외중첩
(
外重疊)된다고 하며, 외중식(外重式) 찰갑이라고도 한다. 반대의 경우는 내중첩(內重疊)
된다고 하며 내중식(
內重式) 찰갑이라고 한다(도 1).
소찰의 연결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소찰들을 좌우로 연결하여 소찰 단(
段)을 만들고 이
를 상하로 연결한다. 소찰을 좌우로 연결하는 데 사용되는 연결기법은 횡결기법, 소찰 단
을 상하로 연결하는 데에 사용되는 연결기법은 수결기법이라 한다. 횡결기법의 경우 소찰
2) 일반적으로 가죽 끈이 많이 사용되며, 직물을 꼬은 끈을 사용하기도 한다.
투공
명칭
기능
수결공
상하 연결
횡결공
좌우 연결
고정·복륜공
좌우 연결·복륜
<표 1> 기능별 투공의 구분
3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내면에 연결 끈이 ‘N/И’자상이나 ‘
⊓/⊔’자상이 되도록 연결되는데, 전자는 횡결1기법,
후자는 횡결2기법으로 분류한다(
釜山大學校博物館 1990: 28)(도 2). 단 두 연결기법상의
기능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김성호 2019a: 32).
수결기법의 경우 소찰의 상·하단 중첩방식, 수결공의 배치와 이에 따른 수결기법의 차
이에 의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김성호 2019b: 239-240). 연결원리(연결방향 및 단
도 2 찰갑의 횡결기법(김성호 2019a: 31 인용)
도 3 찰갑의 수결기법
좌중첩
우중첩
중앙상중첩
중앙하중첩
외중첩/외중식
내중첩/내중식
소찰
외면
소찰
내면
횡결 1기법
횡결 2기법
수결
기법
열 수결
열단 수결
단 수결
연결
원리
방향
종방향
종·횡방향
횡방향
단위
열-열
열-단
단-단
좌중첩
우중첩
중앙상중첩
중앙하중첩
외중첩/외중식
내중첩/내중식
소찰
외면
소찰
내면
횡결 1기법
횡결 2기법
수결
기법
열 수결
열단 수결
단 수결
연결
원리
방향
종방향
종·횡방향
횡방향
단위
열-열
열-단
단-단
도 1 소찰의 중첩방식
좌중첩
우중첩
중앙상중첩
중앙하중첩
외중첩/외중식
내중첩/내중식
소찰
외면
소찰
내면
횡결 1기법
횡결 2기법
수결
기법
열 수결
열단 수결
단 수결
연결
원리
방향
종방향
종·횡방향
횡방향
단위
열-열
열-단
단-단
37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위)에 따라 열(
列) 수결, 열단(列段) 수결, 단(段) 수결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은 기존 연
구(
淸水和明 1996)의 통단위(通段縅), 철부위(綴付縅), 각단위(各段縅)에 해당한다. 각
수결기법은 다시 투공을 관통하는 횟수나 순서에 따라 세분되지만, 연결원리는 같으므로
세분하지 않는다(도 3).
찰갑의 부장방식을 살펴보면, 외중식 찰갑의 경우 소찰 단이 상하로 중첩되기 때문에
중첩식 부장(도 4-1)이 가능하다. 중첩식 부장이 된 찰갑은 연결 끈이 썩어 없어지더라도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원래의 구조를 추정하기 쉽다. 또 유구 바
닥 등에 펼쳐 부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전개식 부장이라 할 수 있다(도 4-2). 전개식으
로 부장될 경우 교란만 없다면 찰갑의 구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찰갑을 말아서
도 4 찰갑의 부장유형
1. 중첩식 부장
2. 전개식 부장
모식도
중첩 전
평면
┃
중첩 후
단면
사례
울산 하삼정 나-26호묘
포항 마산리 149-4번지 2호묘
38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부장하는 등의 방식도 있다. 부장방식에 따라 출토상태가 달라져 구조를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개폐위치나 찰갑 중첩방식 등의 파악에 있어도 중요하다. 찰갑 구조 복원을 시
도함에 있어 반드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부장방식이라 할 수 있다.
2. 구조복원의 방법과 가설설정
찰갑의 구조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가 출토상태이다. 본고에서도 이 출토상
태를 상세히 관찰하여 복원을 시도하였다. 단 찰갑은 구조적 특징상 출토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 이 경우 출토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소찰구성, 연결기법, 다른
자료와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복원을 시도하였다. 구조복원의 방법을 세부적으로 살펴보
면 아래와 같다.
먼저 출토된 소찰을 분류하여 소찰구성을 파악하였다. 소찰은 평면형태와 투공배치, 크
기, 단면형태 등을 통해 분류가 가능하다. 평면형태, 투공배치, 크기가 같은 소찰은 좌우,
상하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동일한 부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형식별 소찰들의 출토위치와 수량을 파악하면 세부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소
찰 분류는 찰갑 구조복원에 있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소찰들을 연결한 연결기법을 검토하였다. 찰갑은 수 백매의 소찰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연결하는 연결기법은 찰갑 제작의 핵심적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찰갑 구조 및 기술
계통 파악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출토상태를 분석하여 형식별 소
찰의 위치를 파악한다. 각 단의 소찰 열수와 소찰 단수를 검토하고 구조복원을 시도한다.
그런데 출토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경우 소찰 구성과 연결기법만으로는 전체 구조를 복
원하기 어렵다. 이 경우 기존 복원 사례와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여 복원하였다. 특히 찰갑
의 둘레와 길이를 알 수 있다면 소찰의 열수와 소찰 단수를 파악할 수 있어 출토상태가 좋
지 않은 자료의 복원도 시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할 연구가 있다.
송정식(2012)은 예안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남성 인골의 평균 신장이 164.1~164.4cm이
고 1979년 한국 2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7.7cm(한국과학기술연구소 1979)이므로, 고
대인과 1979년 한국 20대 남성의 신체 사이즈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1979년 한국
20대 남성의 가슴둘레 평균이 89cm이며 갑옷 내에 입는 속옷 등을 고려, 대략 109cm가
판갑의 둘레라고 보았다. 복천동고분군 출토 종장판갑의 둘레 평균이 100.27cm이며(송정
식 2012), 복천동 21·22호묘에서 출토된 소찰들을 나열하였을 때 길이가 약 106cm이므로
당시 복천동 고분군의 갑옷 둘레는 대체로 100~110cm내외였을 것으로 보인다.
소찰 단수와 찰갑의 길이 추정에는 종장판갑의 사례를 참고한다. 복천동고분군에서 출
39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토된 판갑의 길이는 <표 2>와 같다. 복천동 4호묘 출토 판갑의 전동 길이와 복천동 10·11
호묘 출토 판갑의 후동 길이3)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유사한 크기이다. 두 수치를 제외하고
평균 값을 계산하였을 때, 전동 길이는 41.4cm, 후동 길이는 46.9cm, 협부 길이는 26.1cm
이다.
찰갑이든 판갑이든 기본적으로 의복의 일종(송계현 1988; 송정식 2003; 황수진 2011)
이며 사람이 착장하는 것이므로 제작방식이나 구조가 다르더라도 전체 크기는 크게 다르
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의 수치를 찰갑에도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이하 찰
갑의 구조복원에 활용하도록 한다. 정리하자면 찰갑의 둘레는 100~110cm 내외, 찰갑의
길이는 41~47cm 내외4), 협부 길이는 26cm 내외로 파악할 수 있다(도 5).
3) 도련판에서부터 뒷길판까지의 높이이다. 고대판(후경판)은 목부위에 가까우므로 계측에서 제
외하였다.
4) 판갑의 경우 대부분 전동부보다 후동부가 길다. 다만 찰갑에서는 아직 이러한 사례를 확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단 본고에서는 전·후동부 길이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표 2 복천동고분군 출토 판갑의 높이(cm)
크기
4호묘
10·11호묘
46호묘
57호묘
71호묘-a
71호묘-b
전동 길이
35.1
41.4
41.8
40.6
42.4
40.9
후동 길이
46.3
51.7
(44.7)
46.2
48.7
46.3
협부 길이
23.0
25.4
26.4
24.0
28.3
29.2
도 5 찰갑의 크기
1. 중첩식 부장
2. 전개식 부장
모식도
중첩 전
평면
┃
중첩 후
단면
사례
울산 하삼정 나-26호묘
포항 마산리 149-4번지 2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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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Ⅲ. 4세기대 찰갑의 구조와 특징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4세기대의 찰갑은 5벌로, 복천동 38호묘, 42호묘, 44호묘,
56호묘, 64호묘에서 출토되었다. 이중 56호묘와 64호묘에서 출토된 찰갑은 아직 보고되
지 않아5) 정확한 양상을 알 수 없고, 42호묘에서 출토된 찰갑은 파편으로 구조를 추정하
기 어렵다. 여기에서는 출토상태와 소찰이 상세히 보고된 38호묘와 44호묘 출토 찰갑에
대한 구조복원을 시도한다. 이를 토대로 4세기대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특징에 대해
서도 검토해보고자 한다.
1. 구조복원
1) 복천동 38호묘
① 소찰분류
소찰 분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보고서(
福泉博物館a 2010)에서는 소찰의 평
면형태가 상원하방형인 것과 장방형인 것으로 구분한 뒤 다시 소찰의 크기와 단면의 만곡
유무에 따라 세분하여 총 5종류로 분류하였다. 송정식(2010)은 평면형태와 소찰크기를 근
거로 4종류로 분류하였으며, 김재휘(2019)는 투공배치와 평면형태가 동일한 소찰은 크기
가 모두 같은 것으로 판단하였고, 투공과 평면형태가 서로 다른 것을 기준으로 2종류로 나
누었다.
보고서와 송정식(2010)의 분류안은 평면형태를 하나의 분류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또 소찰의 길이와 폭 뿐만 아니라 상변과 하변의 폭 차이를 기준으로 제형(혹은 부채꼴)찰
의 존재를 지적하였다.
제형찰의 경우 마갑의 경·흉갑에도 다수 사용된다. 제형찰의 가장 큰 특징은 좌우 측변
이 경사져 횡결공 또한 측변의 경사에 따라 배치되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제형
찰을 좌우로 연결하면 소찰 양측변의 경사만큼 기울어진 채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부채꼴
이 된다. 이 찰갑 소찰 중에서 보고서나 송정식(2010)의 분류에서처럼 제형찰로 분류할
수 있는 소찰들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 소찰들은 횡결공이 1단으로 배치되어 있어 부채꼴
로 연결되는 제형찰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한다. 또 불량 투공을 제외하면 소찰 좌·우변의
5) 복천동 64호묘 출토 찰갑의 경우 송정식(2010)의 연구에서 출토상태와 소찰을 확인할 수 있다.
41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횡결공은 양측변의 경사 유무와 관계없이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즉 이 소찰들은 제형
찰로 보이게끔 재단되었을 뿐 실제로 제형찰의 기능을 한 것은 아니다. 소찰의 상변과 하
변의 폭이 달라 제형찰로 보이는 것은 재단이 일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
다.
또 투공배치와 크기가 동일한 소찰을 다시 상원하방형과 장방형으로 세분하였는데, 이
역시 세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상원하방형을 의도하고 제작한 것으로 보이
며 장방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소찰은 일부에 불과하다. 제형찰과 마찬가지로 상원하방형
찰의 상변 일부가 제대로 재단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재단이 불량한 소찰들이 많아 평면형태보다는 투공배치를 우선하여 분류한 다
음, 평면형태와 크기를 통해 세분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김재휘
(2019)의 분류와 같이 투공배치를 통해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투공배치를 통해 분류
된 소찰은 평면형태도 상원하방형과 장방형으로 분명하게 다르다. 상원하방형찰은 다시
크기로 세분되는데, 길이가 7.6cm인 것과 11.9cm인 것6)이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분류
하면 상원하방형찰 2종류와 장방형찰 1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도 6).
형식
A형
B형
C형
모
식
도
수량7)
15매 이상
66매 이상
17매 이상
6) 길이로 세분할 경우, 약 10.4cm인 것, 약 11.1cm인 것, 약 11.9cm인 것으로 세분할 수 있다.
다만 길이가 약 11.9cm인 것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약 10.4cm인 것과 약 11.1cm
인 것이 약 11.9cm인 것과 좌우로 연결된 채 수착되어 있다. 즉 이러한 길이 차이 역시 재단 불
량일 가능성이 있으며, 원래 의도한 길이는 약 11.9cm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별도
로 세분하지 않았다.
7) 소찰 수량은 분리된 소찰들의 수량을 계산한 것이다. 이외에 수십 매의 소찰들이 서로 중첩된
채 수착된 것들이 있는데, 수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계산에서 제외하였다. 다만 육안으
로 관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펴본 결과 B형 소찰이 가장 많고 A형, C형 소찰은 적다. 실제
수량은 알 수 없지만, 분리된 편의 수량만으로도 찰갑에 사용된 각 형식의 소찰들의 비율은 확
인할 수 있다.
도 6 소찰의 분류(S=1/4)
4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② 연결기법
소찰의 연결에 사용된 끈은 대부분 부식되었으나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연결기법을 복
원할 수 있다. 횡결기법은 횡결1기법 혹은 2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수결기법은 열 수결, 고
정기법은 홈질기법이 확인된다. 단 C형 소찰의 경우 연결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A
형과 B형 소찰의 연결기법과 출토상태 등을 통해 연결기법을 추정하였다. C형 소찰의 상
위와 하위에 양변을 따라 있는 투공은 모두 횡결공으로 횡결 1·2기법이, 상변과 하변에 있
는 투공은 고정·복륜공으로 홈질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찰 중앙의 3공 중 아래
2공1조의 투공은 수결공으로 A·B형 소찰과 마찬가지로 열 수결이 사용되었을 것이다(도
7). 나머지 1공은 착장공으로 추정할 수 있다.
③ 출토상태
찰갑은 약 56×75cm 범위 내에서 출토되었다. 소찰들은 대체로 그 상부가 바깥을 향하
고 있다. 소찰의 출토 범위와 방향에서 볼 때 중첩식 부장으로 보인다. 부장 이후 소찰을
연결한 끈이 썩어 없어지면서 소찰들이 바깥방향으로 쓰러진 것이다(도 8).
도 7 소찰 연결기법(
, 불투명 끈은 착장용 끈)
도 8 찰갑 출토상태
형식
A형
B형
C형
모
식
도
수량7)
15매 이상
66매 이상
17매 이상
A형
B형
C형
형식
A형
B형
C형
모
식
도
수량7)
15매 이상
66매 이상
17매 이상
A형
B형
C형
43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소찰의 출토상태가 가장 양호한 쪽은 출토범위 내 서쪽이다. 소찰들이 비교적 정연하게
출토되어 원래의 모습을 추정하는 데에 용이하다. 이를 중심으로 출토상태를 분석해보자.
B형 소찰은 출토 범위 내 전체에서 확인되는데 A형과 C형 소찰은 서쪽과 동쪽에서만 확
인된다. 확인 가능한 소찰 수량과 출토위치에서 볼 때, 찰갑의 대부분은 B형 소찰로 구성
하였고, A형과 C형 소찰은 찰갑의 일부분에만 사용되었을 것이다.
또 대체적으로 C형 소찰 아래 A형 소찰이 확인되며 그 아래로 B형 소찰들이 확인된
다. 이 찰갑이 외중식으로 중첩되었다는 것에서 볼 때(김혁중 2010; 송정식 2010; 이현주
2008), 찰갑 상단에서부터 C형→A형→B형 소찰의 순서로 중첩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C형과 A형 소찰은 수량과 출토상태에서 볼 때 한 단씩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 찰갑은 위에서부터 C형 소찰 1단, A형 소찰 1단, B형 소찰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었
던 것으로 파악된다.
출토위치에서 주목하여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소찰이 확인되지 않는 중앙에서 남서쪽
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도 8). 이 찰갑이 중첩식 부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임과 동시
에, 찰갑의 개폐부위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즉 찰갑을 중첩식 부장하여 중앙에는
소찰이 확인되지 않으며, 남서쪽의 열린 부분은 이 찰갑의 개폐부이다.
④ 구조복원
이 찰갑의 경우 다행히 원래 부장 상태에서 크게 교란되지 않은 채로 출토되어 그 구조
를 복원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사용된 소찰은 세 종류로, 여기에서는 A·B·C형 소찰
로 분류하였다. 각 소찰의 출토위치를 점검해본 결과 위에서부터 C형, A형, B형 순으로
중첩되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중에서 B형 소찰의 수량이 가장 많고 출토 범위
전체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찰갑의 대부분은 B형 소찰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C형과 A형 소찰은 출토 상태에서 서쪽과 동쪽 부분에만 출토되었다. 출토위치상
서쪽부분과 동쪽부분에서 출토된 소찰들이 대칭되는 양상이다. 또 두 소찰 모두 B형 소찰
의 상단에 위치하는 것에서 볼 때, B형 소찰로 어느 정도 완성된 찰갑에 C형과 A형 소찰
이 그 상부에 돌출되는 모습을 추정해볼 수 있다8). 찰갑의 상단에서 대칭되는 두 부분이
돌출되어 일정 공간이 비어있는 곳은 양 팔이 위치하는 공간이다. 즉 출토위치에서 볼 때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가슴 혹은 등이, C형과 A형 소찰이 확인되지 않는 북쪽과 남쪽에는
양팔이 위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8) 찰갑은 먼저 소찰을 횡으로 연결하여 ‘단(段)’으로 만든 후 각 단을 상하로 연결하여 제작한다.
횡으로 연결되는 소찰은 서로 횡결공의 위치가 일치하고 길이도 같아야 한다. 따라서 A형은 A
형 끼리, B형은 B형 끼리 연결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을 경우 횡결공의 위치가
서로 달라 공백이 발생하여 방어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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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서쪽과 동쪽 중 어느 쪽이 가슴 혹은 등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울산 하삼정 나지구 26
호묘 출토 찰갑은 모두 좌중첩되어 있고 개폐부는 우협(
右脅, 우측 옆구리)에 위치하고 있
다9)(도 9). 이 찰갑 역시 좌중첩된 소찰만 확인되고 있어 울산 하삼정 나지구 26호묘 찰갑
과 마찬가지로 우협개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출토위치에서 서쪽은 등(
後胴部), 동
쪽은 가슴(
前胴部)이 위치하는 곳이 된다. 특히 등 쪽의 경우 B형 소찰과 C형 소찰의 끝
열 같고 개폐부와 만나며, 가슴 쪽은 C형 소찰보다 B형 소찰 단이 더 길며 그 끝 열이 개
폐부와 만난다. 이 출토상태를 존중한다면, 정확히는 오른쪽 옆구리의 뒤쪽에서 개폐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10).
C형과 A형 소찰은 각각 1단씩, B
형 소찰은 최대 5단이 확인된다. 다
만 한 단의 소찰 수량이나 전체 소
찰 수량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앞서 설정한 복원 가설을 통해 소찰
수량을 추정하고 찰갑 구조를 복원
하기로 한다. 먼저 찰갑 둘레를 통
해 한 단을 구성하는 소찰 수량을 추
정해보자. B형 소찰 34매 연결하면
길이는 약 109cm가 되어 앞서 설정
한 찰갑의 둘레와 유사한 길이가 된
다. C형과 A형 소찰은 팔의 위치를
고려해 보았을 때 각각 18매(9매×
2), 24매(12매×2)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 찰갑의 길이를 추정해보자. 이 찰갑의 경우 B형
소찰이 최대 5단이 확인되는데 이를 상하로 연결하면 약 46cm가 된다. 여기에 C형과 A형
소찰이 1단씩 추가되면 약 63cm로, 가설에서 설정한 찰갑의 길이보다 길어진다. 종장판
9) 송정식(2010: 137-140)은 이를 전동개폐로 보았다. 그러나 고대판(후경판)과 깃판(측경판)이
출토된 위치, 고대판 아래 돌출된 1단(14점)의 소찰, 고대판(후경판)을 기준으로 좌우 소찰의
수량이 균일하지 않은 점에서 볼 때 전동개폐로 볼 수 없다. 김재휘(2019: 60)도 이와 유사한
이유로 이 찰갑의 개폐부가 우측 혹은 좌측에 치우쳐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대판(후경판)
이 사람의 목 뒤에 위치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 찰갑의 개폐부는 우협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야 한다.
10) 개폐부와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소찰의 폭이다. 이 찰갑처럼 4세기대의 찰갑
은 5세기대의 찰갑에 비해 소찰 폭이 넓은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소찰이 꺾이거나 휘어있지 않
는 이상 인체 굴곡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옆구리는 폭이 넓은 소찰로는 곡률을 맞추기가
어렵고, 결국 소찰이 신체에 제대로 밀착되지 못한다. 소찰이 신체에 제대로 밀착되지 않으면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 찰갑은 개폐부를 측면에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도 9 울산 하삼정 나26호 출토 찰갑 출토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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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갑보다 길이가 길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C형 소찰의 단면 굴곡이 있는 점에서 볼 때 이 찰
갑의 최상단(C형 소찰)은 목 부분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B형
소찰의 최상단이 양 팔의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어 협부쪽 소찰의 수량을 조절하여야 한
다. 이상의 검토결과를 통해 전개 모식도를 작성한 것이 <도 10>이며, 이를 3D모델링 한
것이 <도 11>이다.
이 찰갑에서 중요한 부분은 C형 소찰의 단면 굴곡과 찰갑 내 위치이다. 본고에서는 C형
소찰의 출토위치를 토대로 이 소찰을 찰갑 내 최상단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으며, 목 부위
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이 소찰은 기존 연구에서 요찰(김혁중 2010; 송정식
2010; 이현주 2008; 황수진 2011) 혹은 도련찰11)(김재휘 2019)로 추정되었다.
기존 연구에서 이를 요찰로 생각한 이유는 한 단 정도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량
과 단면의 굴곡이다. 특히 5세기대 찰갑의 요찰은 ‘S’자 등 다양한 형태로 굴곡져있기 때
문에 미약하지만 굴곡진 소찰들을 모두 요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찰갑이
11) 김재휘(2019)는 상반신 찰갑을 검토하면서 이 찰갑이 판갑과 구조상 유사하다고 하였다. 기
존에 요찰(腰札)로 인식되어 온 소찰들은 그 하단에 연결되는 상찰(裳札)이 없으므로 요찰이
라 하기 어렵고, 판갑의 도련판과 같은 역할을 한 도련찰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사실 기존 연구에서의 요찰과 김재휘의 도련찰은 어느 기준으로 용어를 설정하였는가에 의
한 차이로 보인다. 요찰은 이 소찰의 위치가 허리부분에 위치한 것을 중시한 용어로 볼 수 있
으며, 도련찰은 이 소찰이 찰갑 내에서 하는 기능(최하단에서 찰갑을 마감)을 중시한 용어설
정이다. 실제로 김재휘(2019)의 상반신 찰갑 모식도에서도 도련찰은 찰갑의 요찰이 위치하는
곳에 있다. 즉 김재휘(2019)의 도련찰도 허리부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는 요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 10 복천동 38호묘 출토 찰갑 전개 모식도(s=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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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내중식이었거나 찰갑의 안과 밖을 뒤집어 부장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한다면12), C형 소찰
이 찰갑의 최상단에 위치한 것은 분명하다.
본고에서처럼 C형 소찰을 목에 가까운 찰갑의 최상단에 위치한 것으로 보는 것은 기
존 연구와 상반되므로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이 찰갑의 경우 출토상태가 명
확하기 때문에 요찰 혹은 도련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었다. 단 이 찰갑을 기준으로 기
존의 요찰 혹은 도련찰로 분류된 소찰을 모두 찰갑의 최상단으로 추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본고에서는 일단 이 찰갑에 한정하여, 이 소찰이 요찰이나 도련찰이 아니었을 것이
라고 판단한다.
12) 찰갑이 내중식으로 중첩될 경우 하단의 소찰이 상단의 안쪽으로 중첩되기 때문에, 수결공이
소찰 상위에 있을 수 없다. 출토상태에서 수결공이 모두 아래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찰갑의 출토상태에서는 수결공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어 내중식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
찰갑은 의복의 한 종류이기도 하므로 굳이 이를 안과 밖을 뒤집어 부장할 이유도 없다.
도 11 복천동 38호묘 출토 찰갑의 3D모델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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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2) 복천동 44호묘13)
① 소찰분류
소찰은 평면형태가 상원하방(
上圓下方)형이고 크기는 길이
13cm 내외, 폭 3cm 이내이다(도 12). 복천동 38호묘의 찰갑과 비
교하면 상당히 세장(
細長)한 특징이 있다. 횡단면은 곡률이 없고
종단면의 곡률은 ‘S’자에 가까우나 굴곡이 심하지 않다. 소찰 상위
와 중위 중앙에 1공씩의 수결공, 상위 양변에 2공씩의 횡결공14),
하위 중앙에 1공의 복륜공이 있다.
② 유기질제 소찰
이 찰갑에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유기질제 소찰의 존재이다. 구어리 1호묘나
진영 여래리 Ⅱ지구 40호묘 출토 찰갑에서 유기질제 소찰의 존재를 추정(김혁중 2019)할
수 있으나 그 형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외에 다호리 2호묘, 석암리 219호묘, 몽촌토성
등에서도 유기질제 소찰이 출토되었지만, 영남지역 삼국시대 자료 중 유기질제 소찰의 형
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극히 적다.
이 찰갑에서는 철제 소찰 중위에 유기질제 소찰 일부가 외중식으로 중첩된 것이 확인되
었다(도 13-1). 연결에 사용된 끈도 수착된 채 확인되었다. 이 찰갑과 공반된 판갑에서도
유기질제 소찰의 일부가 수착된 것을 관찰할 수 있다(도 13-2).
③ 연결기법
소찰을 연결한 가죽 끈의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수결, 횡결, 복륜기법을 모두 확인
13) 이 절은 김성호(2019)의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14) 복천동 38호묘의 횡결공과는 차이가 있다. 양변에 각각 2공1조를 이루어 투공 간격이 좁은
복천동 38호묘의 소찰과는 달리 횡결공의 간격이 넓다. 횡결기법도 다르다.
도 12 소찰 모식도
(
)
도 13 유기질제 소찰
1. 찰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2. 판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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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할 수 있다. 수결기법은
열 수결, 횡결기법은 경
갑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 소위 ‘×’자 횡결,
복륜기법은 홈질로 고정
한 혁포복륜이 사용되었
다(도 14).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자 횡결이다. 기존 연
구에서 이 횡결기법은 주
로 경갑에 사용된 것으
로 연구되어 왔고(이현주
2010; 황수진 2011), 그
전통은 중원지역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이현주 2010: 356). 그 근거를 평양 석암리
219호묘 혁제 찰갑과 광주 서한 남월왕묘(
廣州西漢南越王墓) 출토 찰갑의 연결기법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 연결기법들은 ×자 횡결이 아니고, 내중식의 고정갑에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소찰 표면에는 <도 15>와 같은 ◇자가 중복된 흔적이 남는다15).
×자 횡결이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4세기대 경갑에서 확인되고 있음은 지적된 바와 같
다. 찰갑에서는 이 찰갑에서 확실하게 확인되었고, 김해 대성동 1호묘에서 출토된 찰갑에
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 찰갑의 소찰과 투공배치가 유사한 김재휘(2019)의 A형
도련찰들도 ×자 횡결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까지 자료상 ×자 횡결은
4세기대 주로 유행한 영남지역의 토착적인 횡결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15)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이 연결기법과 같은 연결원리를 갖는 기법들이 주로 한(漢) 대
유행한다.
도 15 석암리 219호묘 출토 찰갑(왼쪽)과 연결기법 복원 모식도(오른쪽)
1. 찰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2. 판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도 14 소찰 연결기법 모식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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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④ 구조복원
소찰은 대부분 교란된 채 출토되어서 원래 부장상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찰갑의 높이
와 둘레 등을 통해 구조복원을 시도한다. 철제 소찰은 대략 40매가 확인된다. 횡방향 중첩
방식은 모두 좌중첩이다. 40매의 소찰을 횡으로 연결하면 길이는 약 72cm가 된다. 찰갑
의 둘레를 고려하면, 총 60매 가량의 소찰(약 106cm)이 한 단을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
다. <도 13-1>을 통해 소찰의 상단과 하단이 중첩된 간격이 약 7cm임을 알 수 있다. 찰갑
의 높이가 41~47cm이므로 6~7단 정도의 소찰 단이 중첩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철
제 소찰이 허리에, 유기질제 소찰이 허리 위에 위치하는 유기질제 혼용 찰갑16)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철제 소찰 하변 혁포복륜과 그 아래 중첩된 유기질제 소찰의 공존이 다소 이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혁포복륜은 갑주의 가장자리에 이루어진다. 가장자리를 마감하
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면 철제 소찰 하단에 유기질제 소찰을 연결함에도 철제 소찰 하
변을 혁포복륜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검증이 필요하겠으나 혁포복륜의 기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찰갑의 경우 상찰이 탈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조심스레 추정
해본다. 이상의 검토결과를 통해 전개 모식도를 작성한 것이 <도 16>이며, 이를 3D모델링
한 것이 <도 17>이다.
16) 김혁중(2019)은 이 찰갑처럼 유기질제 소찰과 철제 소찰이 혼용된 찰갑을 ‘유기질제 혼용 찰
갑’이라 정의하였다. 본고에서도 김혁중(2019)의 용어를 따랐다.
도 16 복천동 44호묘 출토 찰갑 전개 모식도
1. 찰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2. 판갑에 수착된 유기질제 소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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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2. 특징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천동고분군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4세기대 찰갑은 총 5벌(56
호묘, 38호묘, 42호묘, 44호묘, 64호묘)이다. 이 중 64호묘(도 18-1)에 대하여 송정식
(2010: 137-140)은, 상하 중첩(7~8단)은 외중식이며 좌우 중첩(16~19열)은 좌중첩이고,
개폐방식은 전동개폐로 추정하였다. 정확한 양상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소찰만 사
용된 것과 좌중첩만 확인되는 것에서 볼 때 전체 구조는 복천동 38호묘 찰갑과 유사하며,
개폐방식도 우협개폐일 것으로 보인다.
42호묘(도 18-2)의 경우 유구가 교란되어 소찰은 모두 제 위치를 이탈한 채 수습되었
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종단면 곡률은 미약하지만 C자상이다. 투공배치와 일부 가죽
끈 흔적에서 볼 때 X자상 횡결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소찰의 수량에서 볼
도 17 복천동 44호묘 출토 찰갑의 3D모델링
1. 복천동 64호묘
2. 복천동 42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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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때 이 찰갑 역시 유기질제 혼용 찰갑일 가능성이 있다. 소찰의 평면형태에서는 차이가 있
지만 유기질제 혼용 찰갑인 점, ×자상 횡결기법이 사용된 점 등에서 볼 때 44호묘 출토
찰갑과 구조가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4세기대 재질로 구분되는 두 계통의 찰갑이 존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즉 38호묘, 64호묘 출토 찰갑으로 대표되는 철제 찰갑과 42호묘, 44호묘
로 대표되는 유기질제 혼용 찰갑이다.
38호묘에서 출토된 찰갑은 영남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철체 찰갑이다. 이전 시기의
유기질제 갑주를 철제로 제작하기 시작한 시점의 것이므로 역사적 의미가 큰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소찰을 재단하는 작업이나 투공을 하는 작업에서 미숙함이 보이는 데, 이는 찰
갑 소재를 전환하는 시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찰갑 제작공인이 아직 철제 소
찰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에 비교적 능숙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찰만 철제인 44호묘 출토 유기질제 혼용 찰갑은 38호묘, 64호묘의 철제 찰갑과는 수
결공, 횡결공의 배치에서 큰 차이가 확인된다. 대부분의 찰갑에서 수결공과 횡결공은 두
개의 투공이 하나의 조를 이루는 2공1조로 배치되는 것에 비해 44호묘 찰갑 소찰의 투공
은 1공씩 비교적 넓은 간격을 두고 배치된다. 횡결기법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1기법 혹
은 2기법이 아닌 ×자 횡결이 사용된다. 또 상하좌우로 겹쳐지는 소찰 중첩간격도 비교적
넓다. 이 경우 다른 찰갑보다 같은 길이에 더 많은 소찰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들을 복천
동 38호묘부터 출토되는 철제 찰갑들과는 다른 유기질제 혼용 찰갑의 특징이라 생각하고
있다.
도 18 복천동 64호묘 출토 찰갑(송정식 2010 인용)과 복천동 42호묘 출토 찰갑
1. 복천동 64호묘
2. 복천동 42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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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철제 찰갑의 경우 소찰들이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방어력은 높아지지만, 사용되
는 소찰 수량이 증가하므로 무게와 제작비용 등에서 볼 때 상하·좌우 중첩간격의 제한치
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유기질제 찰갑의 경우 소재만 비교하였을 때, 철제 찰갑
에 비해 방어력이 떨어진다. 그러한 단점을 소찰의 중첩간격을 넓혀 극복한 것이다. 유기
질제 소찰이기 때문에 중첩간격이 늘어나더라도 무게의 부담은 비교적 적다. 즉 44호묘의
유기질제 혼용 찰갑에는 유기질제 찰갑의 구조적 특징들이 구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유기질제 혼용 찰갑은 유기질제 찰갑의 제작전통을 계승한 찰갑으로 볼 수 있
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유독 요찰만을 철제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혁
중(2019)은 ‘갑옷의 경량화’ 때문에 유기질제 혼용 찰갑의 요찰을 철제로 제작한 것으로
보았다. 타당한 지적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찰갑의 무게중심’이다.
수결기법과 수결공의 배치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찰갑은 소찰의 상단과 하
단 간 유동성이 있어 활동성이 좋은 갑옷으로 평가된다. 특히 유기질제 찰갑의 경우 소찰
이 철제 소찰보다 가벼워 그 유동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유동성이 높아질수록 활동성
도 커지는 만큼 방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찰이 움직일 때마다 노출부위가 생길 가
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찰갑의 방어력면에서 볼 때 지나친 유동성은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유동성
을 제어하기 위하여 요찰을 철제로 제작한 것이다. 허리부분에서 철제 소찰이 무게 추 역
할을 하여 유기질제 소찰이 지나치게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즉 복천동 44호묘
도 19 4세기대 찰갑의 특징
철제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
복원
모델
복천동 38호묘
복천동 44호묘
출토 유구
복천동 38호묘, 64호묘
복천동 42호묘, 44호묘
찰갑 재질
철제
유기질제+철제
투공 배치
2공1조
1공1조
중첩 방식
좌중첩
개폐 부위
우협개폐
찰갑 부위
상반신
상반신(+하반신)
위치
동찰
요찰
상찰
모
식
도
수량
82매
10매
9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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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와 같은 유기질제 혼용 찰갑은 기존의 유기질제 찰갑을 한 단계 발전시켜 그 장점을 유지
하면서도 단점을 보완한 찰갑인 것이다.
38호를 표지로 하는 4세기대 철제 찰갑과, 44호를 표지로 하는 4세기대 유기질제 혼용
찰갑은 각각이 구분될 만한 구조적 특징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공유되는 점도 존재한다.
바로 소찰의 중첩방식과 개폐부위이다. 38호묘, 44호묘, 64호묘 출토 찰갑은 모두 상하는
외중첩, 좌우는 좌중첩되며, 개폐부위는 우협에 있다. 즉 4세기대 복천동고분군에는 전체
구조상에서는 동일하나 세부적으로 재질이나 소찰들이 다른 두 계통의 찰갑이 존재한 것
으로 보인다(도 19).
Ⅳ. 5세기대 찰갑의 구조와 특징
5세기대가 되면 복천동고분군에 찰갑 부장량이 이전 시기보다 증가한다. 총 11벌의 찰
갑이 부장되었다. 복천동 10·11호묘, 15호묘, 21·22호묘, 34호묘, 35·36호묘, 47호묘17),
78호묘, (동)2호묘18), (동)8호묘, 학소대 1구 2·3호묘에서 출토되었다. 이중 출토상태가 양
호한 복천동 21·22호묘와 거의 전량의 소찰이 보고된 34호묘 출토 찰갑을 대상으로 구조
복원을 시도하였다.
1. 구조복원
1) 복천동 34호묘
이 찰갑은 박준현·김성호·김재휘(2018)의 연구에서 이미 검토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연결기법이 매우 상세히 검토되었고 이를 통해 대략적인 구조 복원도 시도되었다. 여기에
서는 이 연구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전체적인 구조의 전개 모식도
를 제시한다.
이 고분에서는 동찰(
胴札), 요찰, 상찰을 포함하는 신갑(身甲)과 상박갑(上膊甲)으로
17) 2벌의 찰갑이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福泉博物館 2010a: 98)
18)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유구는 유구의 호수 앞에 (동)을 붙여 구분하였다.
5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이루어진 1벌의 찰갑과 함께, 경갑(
頸甲), 종장판주(縱長板冑)가 출토되었다. 이 중 본고
에서는 동찰, 요찰, 상찰을 중심으로 하는 찰갑의 신갑을 검토하여 구조복원을 시도한다.
① 소찰 분류
소 찰 은 기 존 연 구
(박준현·김성호·김재휘
2018)대로 동찰, 요찰,
상찰로 구분할 수 있다
(도 20). 동찰의 경우 소
찰 전체가 종방향으로
꺾인 것과 상변 일부가
꺾인 것이 확인된다. 종
방향으로 꺾인 것은 찰갑의 곡률
을 잡아주기 위해 옆구리에 사용
된 것이며, 상변 일부가 꺾인 소
찰은 최상단에 위치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박준현·김성호·김재
휘 2018: 92). 상찰은 복륜공이
2공인 것과 3공인 것이 있는데,
3공인 소찰에는 혁포복륜이 확
인되므로 상찰의 최하단에 위치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찰은
완형이 없으나 파손된 소찰들을
조합하여 전체를 복원하였으며,
고정·복륜공의 유무는 알 수 없
다.
② 연결기법
횡결기법으로는 동찰, 요찰,
상찰 모두 횡결 1기법과 2기법
이 사용되었다. 수결기법은 동찰
의 경우 열 수결이 사용되었다.
기존 연구(박준현·김성호·김재휘
도 20 소찰 모식도
철제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
복원
모델
복천동 38호묘
복천동 44호묘
출토 유구
복천동 38호묘, 64호묘
복천동 42호묘, 44호묘
찰갑 재질
철제
유기질제+철제
투공 배치
2공1조
1공1조
중첩 방식
좌중첩
개폐 부위
우협개폐
찰갑 부위
상반신
상반신(+하반신)
위치
동찰
요찰
상찰
모
식
도
수량
82매
10매
92매
도 21 소찰 연결기법 모식도(
)
동
찰
요
찰
상
찰
(
)
55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2018: 92)에서는 열단 수결로 추정하였는데, 열단 수결의 가장 큰 특징인 소찰 열 방향의
수결 띠가 확인되지 않으며, 수결 띠를 고정한 수결 끈의 흔적(소찰 내면에 횡결 1기법 혹
은 2기법과 동일한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열단 수결보다는 열 수결이 사
용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상찰에서는 열단 수결의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요찰
은 상위와 하위에 수결공이 있는데, 상위에서는 동찰의 열 수결용 끈이 마감되었을 것이
며, 하위에서는 상찰의 열단 수결용 띠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정·복륜기법은 동찰의 경
우, 가죽 끈을 이용하여 감침질하였으며, 상찰은 홈질로 연결하였다. 상찰의 경우 고정·복
륜공이 3공이며 혁포복륜된 소찰들이 일부 확인된다. 이 소찰들은 도련찰로 추정된다(도
21).
③ 구조복원
이 찰갑은 출토상태에서 볼 때 목곽 상부에 부장되었다가 목곽이 무너져 내리면서 유구
바닥에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토상태에서는 원래 구조를 추정할 수 없기 때문에 소찰
구성과 복원 가설을 통해 복원을 시도한다.
소찰은 횡방향으로 중첩된 소찰들이 다수 확인되며, 분리된 소찰에도 중첩된 흔적이 뚜
렷하게 남아있어 횡방향 중첩방식의 추정이 용이하다. 동찰과 상찰에서 모두 중앙중첩된
소찰이 확인되어 기존 연구(박준현·김성호·김재휘 2018)와 마찬가지로 동환식 찰갑일 가
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찰갑 뒤쪽(착장자의 등)의 중앙에 중앙하중첩된 소찰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찰갑 앞쪽(착장자의 가슴)을 향해 소찰을 중첩시켜 나간다.
중앙하중첩된 동찰을 기준으로 좌측 소찰은 좌중첩, 우측 소찰은 우중첩된다. 그런데
출토된 소찰을 보면 좌중첩된 소찰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우중첩되어 있다.
상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유구가 파괴된 것을 고려하면 찰갑의 좌측 대부분이 유구의
파괴와 함께 결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찰갑의 둘레를 약 109cm라 하였을 때 한 단에 연결된 소찰은 대략 50매가 된다. 동찰의
경우 6단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팔의 위치를 감안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은
한 단에 38매씩, 나머지 단은 50매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경우 총 272매의 동찰
이 필요하다. 동찰이 80매 가량 출토되었으므로 절반 이상이 결손된 것이다.
동찰의 경우 상변 일부 혹은 전체가 종방향으로 꺾인 소찰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
럼 전자의 경우 찰갑의 최상단에 위치한다(박준현·김성호·김재휘 2018: 92). 꺾인 방향은
바깥쪽이다. 소찰의 상변이 목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을 막기 위함이거나 경갑과의 중복을
피하여 착장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목 혹은 경갑의 위치를 고려하였을
때 찰갑 앞쪽(착장자의 가슴)의 정중앙에 상변 전체가 꺾인 소찰들이 위치하며, 바깥쪽으
로 가면서 상변 일부만 꺾인 소찰이 배치되는 양상으로 이 소찰들을 연결한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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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 22 복천동 34호묘 출토 찰갑 전개 모식도
도 23 복천동 34호묘 출토 찰갑의 3D모델링
동
찰
요
찰
상
찰
(
)
1. 철제 소찰에 수착된 유기물(회색 음영)
회색 음영은 연결 끈
2. 철제 소찰 주변 유기물(표시 부분)
3. 가죽제 칠기 편
57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다. 종방향으로 꺾인 소찰의 경우 팔이 위치하는 찰갑의 양협부에 위치하여 찰갑 전체 곡
률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박준현·김성호·김재휘 2018: 92). 옆구리에서 찰갑
을 인체 곡률에 맞춰주기 때문에, 찰갑이 착장자의 몸에 더 잘 밀착될 수 있다. 이상의 검
토 결과를 통해 모식도를 작성한 것이 <도 22>, 이를 3D모델링한 것이 <도 23>이다.
2) 복천동 21·22호묘
부곽에서 철제 소찰 한 단이
⊔자상으로 출토되었다. 출토상태와 소찰 수량에서 볼 때,
복천동 44호묘 출토 찰갑과 마찬가지로 찰갑의 대부분은 유기질제 소찰로 이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기질제 소찰이 명확한 형태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흔적을 통
해 그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철제 소찰 외면의 하위와 내면의 상위에는 상당량의 유
기물이 수착 되어 있다(도 24-1). 또 출토상태 사진을 보면, 경갑과 철제 소찰사이 공간과
철제소찰 아래 공간에 상당 범위의 유기물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도 24-2). 뿐만 아니라
철제 소찰 주위에서 출토된 소찰로 추정되는 칠기 편에서는 투공과 철제 소찰의 횡결 끈
도 24 복천동 21·22호 출토 유기질제 소찰 추정 위치(1)·범위(2)와 추정 소찰편(3)
1. 철제 소찰에 수착된 유기물(회색 음영)
회색 음영은 연결 끈
2. 철제 소찰 주변 유기물(표시 부분)
3. 가죽제 칠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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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3~0.5cm)과 폭이 유사한 연결 끈(0.3cm)도 확인되고 있다(도 24-3). 이것으로 볼 때
이 찰갑은 유기질제 소찰과 철제 소찰로 구성된 유기질제 혼용 찰갑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① 소찰분류
길이 13cm 내외, 폭 3.3cm내외의 소찰이 총 49매 출토되었
다. 소찰 상위와 중하위 중앙에 각 1공씩의 수결공이 2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횡결공도 2단으로 각각 상위의 수결공과 중하
위의 수결공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고정·복륜공은 하위 중앙
에 1공이 있다. 횡결공을 제외하면 수결공과 고정·복륜공은 투
공배치가 복천동 44호묘 찰갑과 동일하다. 종단면의 곡률은
‘S’자에 가깝다. 상변에서부터 직선적으로 내려오다 1단 횡결
공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굴곡이 시작된다(도 25).
② 연결기법
연결흔적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간격이
넓은 두 단의 수결공을 이용하여 상단과
하단을 열 수결로 연결하였다. 횡결은 제
1기법이 사용되었다. 철제 소찰의 하변에
는 홈질기법으로 혁포를 고정한 혁포복륜
이 확인되며, 유기질제 소찰은 홈질로 고
정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도 26).
③ 출토상태
이 찰갑은 경갑과 함께 부곽의 남쪽에
서 출토되었다. 크게 3군으로 나뉘어
⊔
자상으로 펼쳐져 있었다. 보고자는 중앙상중첩된 소찰을 중심으로 좌우 각각 24매씩 연결
되는 것으로 복원하였다.
출토상태를 보면(도 27) 소찰 외면이 위를 향하고 우중첩된 북쪽 소찰군과, 소찰 외면
이 아래(유구 바닥)를 향하고 좌중첩된 서쪽 소찰군, 소찰 외면이 바닥을 향하고 우중첩된
남쪽 소찰군으로 나눌 수 있다. 북쪽 소찰군에는 10매 이상, 서쪽 소찰군에는 14매, 남쪽
소찰군에는 5매 이상씩 있는 것으로 보아, 중앙중첩찰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상태
를 존중한다면 중앙상중첩된 소찰을 중심으로 좌측에 우중첩, 우측에 좌중첩된 소찰들이
연결되는 식으로의 복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 25 소찰 모식도
도 26 연결기법 모식도
59
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또 북쪽, 남쪽 소찰군은 서로 평행하게 놓여있고, 그 사이에 서쪽 소찰군이 이와 직교하
고 있다. 각 군내의 소찰들은 비교적 정연한 상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 군끼리는 서로 직
각을 이루는 점에서 볼 때 이 찰갑은 크게 세 부위로 구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갑의 정후방부지판(
正後方部地板)이 서쪽, 전방부(前方部)지판이 동쪽에 있는 것에
서 볼 때, 서쪽 소찰군은
후동부, 북쪽 소찰군은
좌전동부, 남쪽 소찰군은
우전동부에 해당하는 것
으로 판단할 수 있다. 원
래 부장모습은 정확히 알
기 어려우나, 북쪽 소찰
군의 외면이 위를 향하고
서쪽과 남쪽 소찰군의 외
면이 바닥을 향하며, 경
갑이 남쪽을 향해 넘어진
점에서 볼 때, 이 찰갑은
부장 이후 남쪽으로 쓰러
진 것으로 추정된다.
④ 구조복원
소찰은 총 49매가 확인되었다. 출토상태에서 일부 확인되지 않거나 교란된 소찰들을 조
정하여 후동부에 23매의 소찰이 있고, 좌·우전동부에는 각각 13매의 소찰이 있는 것으로
복원할 수 있다. 좌전동부와 우전동부 사이 간격이 매우 넓으므로 이 찰갑의 개폐부는 전
동부 중앙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좌전동부, 후동부, 우전동부의 가장자리 소찰들은 출토상태에서 볼 때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일정 공간이 비워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은 인체의 양 옆구리에
해당하는 부위이다. 복천동 34호묘의 찰갑 중 종방향으로 꺾여 찰갑의 곡률을 잡아주는
소찰이 있는 것처럼, 이 찰갑에서는 양 옆구리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어 곡률을 잡아준 것
으로 보인다.
위의 찰갑들과 마찬가지로 신체 크기를 계산하면, 철제 소찰로 된 요찰을 중심으로 위
쪽에는 유기질제 동찰이 4단, 아래로 유기질제 상찰이 2단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다. 동찰의 제 1단과 제 2단은 팔이 있는 위치에 일부 소찰들이 생략되었을 것이다(도 28,
29).
도 27 찰갑 출토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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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 28 복천동 21·22호묘 출토 찰갑 전개 모식도
도 29 복천동 21·22호묘 출토 찰갑의 3D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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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2. 특징
복천동 34호묘는 5세기 1/4로 편년되는 유구로 찰갑 소찰의 크기가 이전 시기 복천동
38호묘와 44호묘의 것에 비해 작아지고 세장해졌다(도 30). 즉 더 많은 소찰들이 더 많이
중복되어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신갑도 동찰, 요찰, 상찰에 사용된 소찰들을
구분하며 연결기법도 달리하여 각 부위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또 동찰에서 확인된 꺾여진
소찰(도 30-특수찰 1, 2) 등에서 볼 때 이 찰갑에서는 신체 곡률이나 특징을 소찰에 적극
적으로 반영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투공이나 재단 상의 실수 없이 소찰들이 규격화19)
된 점도 특징이다. 즉 찰갑의 제작 기술이 발달된 것이다. 이외에도 찰갑의 개폐부가 중앙
으로 이동하는 등 이전 시기 찰갑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박준현·김성호·
김재휘(2018:109-110)는 이 찰갑이 5세기 1/4에 갑주 전환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소찰 크기의 축소로 인한 방어력 증대, 신갑의 부위 구분, 특수한 위치에 사용되는 소
찰, 소찰의 규격화, 찰갑의 중앙개폐(⊂동환식 찰갑)로 정리할 수 있는 이 찰갑의 특징은
이후 시기 찰갑에서도 대체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즉 이후 시기 유행하는 찰갑의 구조상
의 특징이 이 시기에 어느 정도 정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유구의 시기로 보았을 때
19) 소찰의 규격화란 같은 부위에 사용된 소찰의 평면형태, 크기, 투공배치가 일정해지는 것을 의
미한다. 복천동 38호묘 찰갑의 소찰은 규격화되지 못한 것으로 같은 부위에 사용된 소찰임에
도 서로 차이가 크다. 반면 44호묘 출토 찰갑은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있다. 즉 4세기 후반부
터 소찰의 규격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도 30 복천동 38호묘, 44호묘 출토 찰갑과 복천동 34호 출토 찰갑의 소찰 비교(동일 축척)
복천동 38호묘
복천동 44호묘
복천동 34호묘
동찰
동찰(특수찰1) 동찰(특수찰2)
동찰
요찰
상찰
동찰
요찰
상찰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0·11호묘
철제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
복원
모델
복천동 34호묘
복천동 21·22호묘
출토 유구
복천동 34호묘, 10·11호묘,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5호묘, 78호묘,
(동)2호묘, (동)8호묘
찰갑 재질
철제
유기질제+철제
투공 배치
2공1조
1공1조(+2공1조)
중첩 방식
중앙중첩
좌중첩(+우중첩, 중앙중첩)
개폐 부위
전동개폐
우협개폐(+전동개폐)
찰갑 부위
전신
상반신+하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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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게 된 계기를 고구려 남정에서 찾을 수 있다(박준현·김성호·김재휘
2018).
세부적인 차이는 있겠으나 복천동고분군의 대표적인 5세기대 철제 찰갑인 학소대 1구
2·3호묘와 복천동 10·11호묘 출토 찰갑 역시 전체적인 구조는 복천동 34호묘 찰갑과 유사
하다고 판단된다(도 31).
소찰이 규격화된 점, 동찰·요찰·상찰에 각각 다른 소찰과 연결기법을 사용하여 구분하
는 점, 중앙중첩된 소찰을 중심으로 좌우로 소찰을 연결한 점, 찰갑의 양 협부·최상단 등에
는 소찰을 꺾어 신체 굴곡을 맞추거나 특수 기능을 하게 한 점이 34호묘로 대표되는 5세
기대 철제 찰갑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복천동 21·22호묘나 15호묘, 복천동 (동)2호묘, (동)8호묘 출토 찰갑은 경갑과 철
제 요찰만 출토된 유기질제 혼용 찰갑이다. 이 중 21·22호묘 찰갑은 중앙중첩된 소찰 없이
전동부는 우중첩, 후동부는 좌중첩되는 방식으로 소찰을 연결하였다. 수결공의 배치나 수
결기법은 복천동 44호묘의 찰갑과 동일하다. 즉 한 방향으로 중첩되는 것, 수결공의 배치
와 수결기법이 복천동 44호묘와 동일한 것에서 볼 때, 이 찰갑은 4세기대 찰갑, 특히 유기
질제 혼용 찰갑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4세기대 유기질제 혼용 찰
갑과는 달리 개폐방식이 전동개폐로 확인되고, 중첩방식에서 좌중첩과 우중첩이 같이 사
용되거나 중앙중첩((동)2호묘와 (동)8호묘)이 확인되는 등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난다(도
32).
도 31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0·11호묘 출토 찰갑 소찰(동일 축척)
복천동 38호묘
복천동 44호묘
복천동 34호묘
동찰
동찰(특수찰1) 동찰(특수찰2)
동찰
요찰
상찰
동찰
요찰
상찰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0·11호묘
철제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
복원
모델
복천동 34호묘
복천동 21·22호묘
출토 유구
복천동 34호묘, 10·11호묘,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5호묘, 78호묘,
(동)2호묘, (동)8호묘
찰갑 재질
철제
유기질제+철제
투공 배치
2공1조
1공1조(+2공1조)
중첩 방식
중앙중첩
좌중첩(+우중첩, 중앙중첩)
개폐 부위
전동개폐
우협개폐(+전동개폐)
찰갑 부위
전신
상반신+하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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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도 32 5세기대 찰갑의 특징
복천동 38호묘
복천동 44호묘
복천동 34호묘
동찰
동찰(특수찰1) 동찰(특수찰2)
동찰
요찰
상찰
동찰
요찰
상찰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0·11호묘
철제 찰갑
유기질제 혼용 찰갑
복원
모델
복천동 34호묘
복천동 21·22호묘
출토 유구
복천동 34호묘, 10·11호묘,
학소대 1구 2·3호묘
복천동 15호묘, 78호묘,
(동)2호묘, (동)8호묘
찰갑 재질
철제
유기질제+철제
투공 배치
2공1조
1공1조(+2공1조)
중첩 방식
중앙중첩
좌중첩(+우중첩, 중앙중첩)
개폐 부위
전동개폐
우협개폐(+전동개폐)
찰갑 부위
전신
상반신+하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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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Ⅴ. 맺음말
이상에서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복원을 시도하였다. 찰갑의 소찰구성, 연결기
법, 출토상태를 분석하여 복원 모식도와 3D 모델링안을 제시하였다. 발표문에서는 출토
상태가 좋거나 복원에 용이한 찰갑들을 선별하여 복원하였고 이를 통해 출토상태가 좋지
못한 자료들에 대한 구조 추정도 시도해보았다.
4세기대 찰갑은 크게 철제 찰갑과 유기질제 혼용 찰갑으로 나누어 복원할 수 있었다.
양자는 재질뿐만 아니라 투공배치 등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5세기대 역시 철제 찰갑과 유
기질제 혼용 찰갑이 모두 존재하였다. 4세기대 찰갑을 계승하는 요소들도 확인되지만, 5
세기대 들어 새롭게 확인되는 요소들도 있었다. 5세기대 복천동고분군 찰갑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출현하는 배경에는 고구려군 남정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복원안에 보완되어야 할 점들과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찰갑의 크
기 등은 지속적으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다만 본 발표문에서
는 모식도와 3D모델링을 통해 찰갑 구조복원을 시도하였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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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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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2008, 「三國時代의 甲冑」, 『한국과 일본의 무구』, 宮崎縣立西都原考古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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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 2011, 「삼국시대 영남 출토 찰갑의 연구」, 『한국고고학보』78.
6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67
토론문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에 대한 토론문_박준현
「동래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의 3D 구조복원
」에
대한 토론문
박 준 현
합천박물관
발표자는 동래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모든 시기 찰갑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서 검토
하고 찰갑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3D 모델까지 제시하였습니다. 현재 소찰 연구가 중심
인 찰갑의 연구에서 전체적인 구조 복원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발표자가
전체적인 구조복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발표자
와 관점을 달리하는 부분과 의문 사항이 있어 토론문을 통해 질문하겠습니다.
1. 찰갑에 적용된 수결기법(도 3)을 열 수결, 열단 수결, 단 수결의 총 3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수결기법은 찰갑의 계통과 시기성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제작기법으로 그 복
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천동고분군 출토 찰갑 또는 이외의 삼국시대 찰갑에
서 단 수결이 적용된 예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2. 4세기 찰갑의 길이는 복천동고분군 출토 판갑의 높이를 참고하여 41~47cm 내외로
파악하였습니다. 하지만 판갑과 찰갑은 착장자의 방어 범위가 다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
합니다. 그 예로 포항 마산리 2호분에서 출토된 찰갑의 높이는 87cm로 발표자께서 제시
한 높이와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1)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부
탁합니다.
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포항 마산리 149-4번지 유적」, 『2011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
서』 Ⅸ, p.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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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3. 복천동 21·22호분 출토 유기질제 혼용찰갑은 출토 상태를 토대로 좌·우 전동부와 후
동부의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복원(도 27, 28)하였습니다. 종장판갑은 3부분으로 나누
어지더라도 혁대경첩으로 각 부분을 고정할 수 있지만, 찰갑의 경우 나누어진 부분의 연
결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찰갑의 협부에서 나누어지는 부분은 어떤 연결을 상정하
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형태는 보고된 요찰의 실측도면(도 23-1)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 경우 보
고서에 수록된 실측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의견을 구합니다.
주제발표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김 혁 중 (국립김해박물관)
71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Ⅰ. 머리말
옥전고분군은 가야 찰갑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가야 유적에
서 갑주가 출토된 유적은 적지 않으나 늦은 시기 가야 갑주 문화를 옥전고분군처럼 잘 보
여 주는 사례는 현재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찰갑은 6세기대에 해당하는 자료도 포함
하고 있어서 이 시기의 가야 찰갑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가야 찰갑을 복원하는 노력은 매우 빈약했다고 보아도 과
언이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 가야 후기라고 구분하고 있는 이 시기의 찰갑에 대한 연구는
다른 분야의 유물 연구와 비교하여도 논의가 활발하였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에 대한 연구사는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한 정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당시 옥전고분군을 조사한 경상대학교박물관 조사단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에서 당시 찰갑의 구조를 보고서 본문에 충실히 언급하고 있다. 또한 가야를 포함한 영남
지방 출토 찰갑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황수진 2011)은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에 대
한 실마리를 어느 정도 논의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료로 판단된다.
본 발표가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완전한 구조를 제안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번 발표
는 이제까지 밝혀진 구조를 현재까지 찰갑 연구를 참고로 부분적으로나마 구조를 밝혀내
Ⅰ. 머리말
Ⅱ.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
1. 출토 자료의 분석
2. 특징과 의미
Ⅲ. 맺음말
목 차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김 혁 중
국립김해박물관
7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에 옥전고분군 보고서에 보고된 내용을 기본으로 하되 최근 연
구 성과를 비교한 후 발표자의 의견을 더하고자 한다.
Ⅱ.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
1. 출토 자료의 분석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은 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1985년도부터 1992년까지 발
굴조사한 범위에서 확인된다. 최근 한빛문화재연구원(2020)에서 조사한 출토품이 있으나
현재 정확한 양상을 알기는 어렵다. 이에 경상대학교 박물관 출토 찰갑 현황은 표 1과 같
이 정리할 수 있다.
연번
출토고분
공반 갑주
시기1)
찰갑 수량
1
옥전 67-B호분
종장판주 1
Ⅱ
1건
2
옥전 5호분
-
Ⅲ
1건
3
옥전 28호분
판갑 1, 마갑 1, 마주 1
Ⅲ
1건
4
옥전 35호분
종장판주 1, 마주 1
Ⅲ
1건
5
옥전 M1호
종장판주 3, 마갑 1, 마주 1
Ⅲ
2건
6
옥전 M3호
소찰주 1, 종장판주 1, 마주 2
Ⅳ
2건
7
옥전 M7호
-
Ⅳ
?
표 1은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의 양상을 다른 종류의 갑주 부장 상황과 시기 그리
고 수량을 정리한 것이다. 이 표에서 부속갑은 공반 갑주에 포함하지 않았는데 공반된 판
갑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찰갑의 부분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경갑이 그
러한 부속갑이다. 이외에도 경갑만 확인된 고분으로 옥전 23호, 70호가 있다. 이 갑옷은
보고서에 언급한 것과 전고에 발표자가 발표한 논고(김혁중 2019)를 참고한다면 유기질
혼용찰갑의 일부 혹은 유기질제 찰갑의 부속갑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좀 더 근거
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에 본 발표에서는 찰갑의 범주에서 제외하고자 하며 M7호 출토 찰
1)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부장 시기는 조영제의 논고(2007)를 참고하였다.
표 1.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 현황
73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갑도 자료가 빈약하여 검토에서 제외하겠다.
1) 옥전 67-B호
발굴조사보고서는 소찰의 위치를 요찰, 동찰, 상찰, 상박찰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구분
하는 기준은 출토 상태를 근거로 한 것이다. 옥전 67-B호는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다른
찰갑보다 소찰의 위아래 겹침이 잘 확인된다(그림 1-2~4). 더 나아가 각 부위의 겹침 상
태도 보고하고 있는데 상찰은 위아래 겹침이 모두 4단이고 동찰은 6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 하였다. 물론 유구 도면에 표시된 도굴 흔적을 감안하면 단 수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단 수
비고
요찰
상원하방
S
6.1 ~ 6.4, 3.0
동찰
상원하방
일자
6.1 ~ 6.4, 3.0
6단
상찰
상원하방
일자
동찰 동일 크기 ?
4단
상박찰
상원하방
일자
4.9, 2.8
경갑 ?
장방형
5.5~6.5, 2.6~3.2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과 조금 다른 견해도 있다. 황수진은 보고서에 기록된 상찰의 길
이(6.1~6.4㎝)가 동찰보다 조금 더 긴 것(7㎝)으로 보았다(2011).
이 찰갑은 다행 스럽게도 요찰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소찰 형태를 잘 알 수 있다(그림
1-4). 이를 기준으로 동찰과 상찰로 나누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그런데 이 중 상
박찰로 판단되는 소찰 주변에 장방형 크기의 소찰 19매가 확인된다. 이 소찰은 나열된 위
치와 소찰의 배치 등을 고려하면 경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소찰은 모두 가운
데 1열로 상부에 2공 1조의 투공이 확인된다. 이를 감안하면 동찰과 상찰 분리형보다 일
체형으로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옥전 고분군 출토 찰갑의 수결공 배치를 종
합적으로 보면 이와 다른 배치도 있어서 찰갑의 구조가 분리형과 일체형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데 옥전 67-B호 출토 찰갑은 일체형일 가능성이 높다.
2) 옥전 5호분
발굴조사보고서는 요찰을 제외하고 소찰의 형태에 따라 A~D형으로 구분하였다. 당시
조사 여건을 고려하면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찰갑의 출토 상태 도면을 고려하면 구조 복
원 측면에서 아쉬움이 큰 보고이다. 이처럼 언급하는 이유는 그림 2–2를 보면 찰갑을 구
성하는 소찰의 위치가 원형을 띠고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수습 당시 보고서에 분류
된 소찰을 기준으로 위 아래 연결 상황을 면밀히 살펴서 보고하였다면 옥전 67-B호처럼
표 2. 옥전 67-B호 출토 찰갑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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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동찰과 상찰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비고
요찰
상원하방
Ω
9.9 ~ 10.2, 1.7 ~ 2.7
A형
상원하방
일자
5.8 ~ 6.0, 2.2
80점
B형
상원하방
일자
6.0, 2.0
109점
C형
상원하방
일자
5.7, 2.1
97점
D형
상원하방
일자
5.6 ~ 6.0, 2.0 ~ 2.2
11점
-
장방형
일자
6.2, 3.5
2점
그림 1. 옥전 67-B호 출토 찰갑
표 3. 옥전 5호분 출토 찰갑 상세
그림 1 .옥전 67-B호 출토 찰갑
75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이러한 상황에서 소찰 일부를 동찰로 보는 견해도 있다(황수진 2011). 소찰 분류 중 A
형과 B형 소찰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리고 요찰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차이점은 수결
공과 평면의 크기이다.
발굴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요찰은 모두 57점으로 보고하였다. 그런데 발표자가 조사한
바로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고 수결공이 한 개 더 있는 요찰은 1점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요찰은 어떻게 이해해야될까. 부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요찰과 연결되
는 다른 소찰들을 통해 그 성격을 유추해보자. 이 소찰들은 투공을 통해서 묶는다면 A~D
형 중 A~C형과 D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기준은 수결공이다. 요찰을 편의상 크기가 작
은 것(그림 2-3)을 a, 큰 것을 b(그림 2-4)로 구분한다면 b는 수결공이 하나 더 자리하고
있으며 통상 제3수결공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제3수결공을 가진 소찰이 요찰을 제외하
고 D형 소찰에 있기에 혹시 별도의 찰갑이 하나 더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해 보고자 한다.
또한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은 모두 상원하방형인데 장방형으로 제작된 소찰도 2점이
그림 2. 옥전 5호분 출토 찰갑
7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있다. 이 소찰의 평면형태는 정확하게 살펴보면 사다리꼴 형태에 가깝다. 찰갑이 아닌 갑
옷과 투구에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부장된 다른 갑주가 없기에 단정하기 어렵다.
3) 옥전 28호분
발굴조사보고서는 소찰 분류의 기준으로 동래 복천동 11호 출토 찰갑을 기준으로 분
그림 3. 옥전 28호분 출토 찰갑
77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류하였다고 한다. 구분한 종류는 요찰을 포함하여 모두 4가지로 전체 구조를 살펴보는데
매우 유용하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비고
요찰
상원하방
S
12.5~13, 2.5~3
40점
상찰
상원하방
일자
5.5, 3.5
260점
동찰
상원하방
일자
7.6~7.2, 2.8~3.2
160점
상박찰
상원하방
일자
3.8, 2.8
4.2~2.7
4.0, 2.0
10점
250점
20점
기타
상원하방
일자
9.3~9.6, 2.6
2점
그런데 발굴조사보고서에 제시한 상찰과 동찰을 다르게 보고 있어서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고서에 분류한 동찰은 상찰보다 길이가 작은데 반하여 황수진은 좀 더 길이
가 큰 소찰을 동찰로 보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수결공의 위치이다. 요찰은 상변과 중앙에 수결공이 확인되는데
상변은 수결공 위치가 2열이고 중앙은 1열이다.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황수진이 분류한
것처럼 현재 발굴조사보고서에 분류한 상찰은 동찰로 동찰은 상찰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발표자는 찰갑의 구조를 복원하는데 요찰에 확인되는 수결공 위치가 주목
된다. 앞에서 옥전 67-B호 출토 찰갑 구조를 언급하면서 분리형과 일체형을 언급한 바 있
다. 옥전 28호분 출토 찰갑은 요찰을 기준으로 동찰과 요찰을 한 세트로 상찰을 다른 세트
로 나누어 분리형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외에도 상변에 투공이 나란히 있는 소찰이 2점 출토되었다(그림 3-8,9). 정확한 위치
를 알기 어렵지만 옆구리에 해당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4) 옥전 35호분
발굴조사보고서는 요찰을 제외하고 소찰의 형태에 따라 A~D형으로 구분하였다. 이 중
에 A형은 상박갑(상박찰), C형은 동찰, D형은 상찰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보고서에서 C형을 동찰로 본 것과 달리 B형을 동찰로 판단한 견해(황수진
2011)가 있다. 그 근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발표자가 판단하기에는 소찰의 수결공으
로 소찰의 그룹을 나눌 수 있다. 우선 요찰을 제외하고 제3수결공이 확인되는 소찰은 B형
과 C형이고 A형과 D형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D형은 보고서에서 제시한 것처럼 상찰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B형과 C형이 동찰과 상찰이 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
표 4. 옥전 28호분 출토 찰갑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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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지만 이 두 유형의 소찰 중 어느 것이 동찰이고 상찰인지 현재 자료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비고
요찰
상원하방
S
10.8, 3.2
40점
A형 – 상박갑?
상원하방
일자
6.5, 3.4
157점
B형
상원하방
일자
7.6~7.9, 3.4
9점
C형 - 동찰
상원하방
일자
6.8, 3~3.3
25점
D형 - 상찰
상원하방
일자
6.7, 2.9
10점
5) 옥전 M1호
발굴조사보고서는 M1호에서 모두 2건의 찰갑이 확인된다고 되어 있다. 이 중 찰갑B는
표 5. 옥전 35호분 출토 찰갑 상세
그림 4. 옥전 35호분 출토 찰갑
79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동일한 형태의 소찰군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찰갑A에 대한 검토만 하겠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비고
요찰
상원하방
S
8.1, 2.4
동찰
상원하방
일자
6, 2.5
상찰
상원하방
일자
5, 2.1
상박찰
상원하방
일자
4.2, 2.1
찰갑A도 출토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요찰을 제외하고 소찰의 크기와 형태에 차이는 크
지 않아서 동찰과 상찰을 판단하는 것은 싶지 않다.2) 상박찰로 판단되는 소찰(그림 5-7,
8)을 제외한 두 소찰의 큰 차이는 수결공에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소찰은 제3수결공이 확
인된다. 요찰의 투공도 일반적인 수결공보다 간략하게 상변에 하나 그리고 중앙에 하나인
점은 옥전 M1호 출토 찰갑의 특징이다.
2) 보고서(합천 옥전 고분군 Ⅲ:33) 도면 20-7은 소찰 위아래가 연결된 소찰군을 실측해서 보고했
지만 너무 간략하게 보고되어 그 양상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표 6. 옥전 M1호 출토 찰갑 상세
그림 5. 옥전 M1호 출토 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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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6) 옥전 M3호
발굴조사보고서는 M1호에서 모두 2건의 찰갑이 확인된다고 되어 있다. 이 중 찰갑A는
요찰만 확인(그림 6-2)되며 찰갑B는 개별 소찰에 대한 실측도가 없이 출토 상태에 대한
약측만 보고된 상태(그림 6-4)이다.
구분
평면
단면
크기(길이, 넓이)[㎝]
비고
요찰
상원하방
Ω
8.5~9.1, 2.8
그림 6. 옥전 M3호 출토 찰갑
표 7. 옥전 M3호 출토 찰갑 상세
81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표 7은 찰갑A의 요찰에 대한 제원이며 모두 47매가 확인된다. 다른 부위의 소찰은 확인
되지 않고 경갑과 세트인 갑옷으로 유기질제 혼용 찰갑으로 판단된다.
찰갑B는 보고서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소찰은 2종류가 확인된
다. 동찰은 모두 8단이며 각 단은 31매 이상으로 추정된다. 소찰 연결을 보기 위한 투공은
부식 등으로 막혀서 확인하기 어렵다. 소찰의 길이는 8.5㎝, 폭은 3.3㎝ 정도이다. 어깨로
추정되는 부분에 모두 7단으로 구성된 소찰군이 확인된다. 이 소찰의 크기는 길이 5.3㎝,
폭 3.3㎝ 이다.
2. 특징과 의미
이제까지 옥전고분군 6기에서 출토된 찰갑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은 소찰 크기나 투공배치 등을 엄밀히 살펴본다면 동일한 구조로 제작된 것은 찾아보
기 어렵다. 이러한 점은 동일한 유구에서 나온 찰갑도 차이가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제작
된 찰갑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이가 시기에 따른 변화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
렵다. 그 의미를 찾는다면 소유의 제한 혹은 공인 집단의 차이를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찰갑이 부장된 고분은 대형분 중심으로 출토된 자료만을 가지고 당시 생산 체계를 분석하
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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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Ⅲ. 맺음말 – 연구 과제
복원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실제 제작을 하여 그 결과나 데이터를 바탕으
로 현재의 의문점과 문제점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복원 연구의
기초 자료로 현재까지 보고된 자료를 종합하고 자료에서 확인되는 의문점을 중심으로 발
표자의 의견을 더하여 보았다.
그러나 소찰의 연결기법이나 위치를 알 수 없는 소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발표자의 능력 부족이기도 하면서 옥전고분군 조사가 완료된지 20년
이 지났지만 충실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은 아무래도 재현품 제작을 통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또한 동시기 찰갑 자료
에서 확인된 새로운 사실은 향후 충실한 복원 연구에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실제 유물 관찰
을 바탕으로 제작을 통한 복원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83
김혁중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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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중, 2019,「삼국시대 영남지방 유기질제 혼용 찰갑의 기술계통과 특징」, 『영남고고
학』83.
조영제, 2007,『옥전고분군과 다라국』, 혜안.
황수진, 2011, 「삼국시대 영남 출토 찰갑의 연구」, 『한국고고학보』제78집.
한빛문화재연구원, 2020, 「합천 옥전고분군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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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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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에 대한 토론문_오광섭
「옥전고분군 출토
찰갑의 구조와 의미
」에
대한 토론문
오 광 섭
울산문화재연구원
1. 67호분 출토 찰갑과 같이 5세기 전엽의 자료에서는 제3수결공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3수결공의 존재 여부가 편년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2. 5호분 출토 찰갑에서는 제3수결공이 있는 개체가 하나 밖에 확인되지 않습니다. M3
호와 같은 상당 범위의 유기물 신갑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동찰과 상찰이 분리되는 구조
이기 보다 착장시 상하열의 폭을 조정하는 등의 마감 개체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옥전 자료 중에 비갑이 확인되는 것이 28호, 35호, M1호 등의 자료가 있는데요. 거
의 종장판주와도 공반하고 있습니다. 상원하방형 혹은 상방하방형 개체들이 대개 수미부
(뒷목)가리개 혹은 비갑의 손등가리개로 인식되고 있는데요. 특별히 개체간 연결방식 등
에서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까? 또한 일본측 자료와 같이 시간적으로 상원하방형 개체
간의 상하 연결이 1열수결에서 2열수결로 바뀌는 양상이 옥전 혹은 한반도 찰갑에서도 확
인되는지가 궁금합니다?
4. 28호분 출토 찰갑에서 2열수결공이 확인되고 있고, 횡장판갑(대금식판갑)과 공반되
다 보니, 지금도 2열수결공이 왜계 요소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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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주제발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하쓰무라 다케히로 (공익재단법인 원흥사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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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Ⅰ. 머리말
소찰이라 불리는 작은 철판을 많이 사용하는 무구(찰식갑주(
札式甲冑), 소찰식갑주)는
5세기대에 대륙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입된 무구이다. 각 지역에서 도입된 이후 점
차 중심적인 무구로 사용된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료의 잔존 상황이 좋지 않아 각 자료의
구조를 파악하거나 원래 용도를 알기 어려웠다.
최근 한국
・일본열도에서 출토 상황이 양호한 자료가 출토되고 있는 데다 과거의 자료
가 재정리되고 연구자들의 인식이 향상되면서 찰식갑주(
札式甲冑)의 기본적인 구조를 규
명하거나 기존 자료의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미력하나마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자료와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자료를 비교하여 양자의
관계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Ⅰ. 머리말
Ⅱ. 가야의 찰식갑주(
札式甲冑)
Ⅲ. 일본열도의 소찰식갑주
Ⅳ. 일본열도에서 확인되는 한반도계갑주
Ⅴ. 가야의 왜계소찰식갑주
Ⅵ. 소찰식갑주의 변용전개로 본 가야
왜의 관계성
목 차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하쓰무라 다케히로
공익재단법인 원흥사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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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Ⅱ. 가야의 찰식갑주(
札式甲冑)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찰식갑주(
札式甲冑)로 찰갑(胴甲), 종신판주(縦矧板冑), 襟甲,
견갑(
肩甲), 籠手(팔뚝 가리개), 정강이가리개(臑当)가 존재한다. 가야지역뿐 아니라 신라
지역에서도 비슷한 자료가 출토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주로 가야지역의 갑주에 대해 언급
한다. 또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갑옷이더라도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갑주의 영향이 큰 것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1. 찰갑
竪上의 최상단에서 상단에서 草摺裾札을 일련으로 하는 외중식(外重式)의 찰갑이 출
토되고 있다. 여러 찰갑에 보이는 특징으로는 ①원두위공(
円頭威孔) 1열의 소찰을 사용,
②
綴孔은 8개, ③ 요찰은 S자으로 만곡한 S자형 요찰 등이 있다. 威技法으로는 通段威・
綴付威와 일찍부터 第3威孔이 있는 각 段威b類 또는 通段威b類가 이용된다.
복천동 21
・22호분처럼 요찰만 출토된 사례가 있지만 관찰해보면 가죽 소찰이 사용된
흔적이 확인된다. 즉 철제요찰만이 아니라 철제요찰과 가죽평찰이 조합된 찰갑임을 알 수
있다.
2. 투구
・錣(수미부가리개)・頬当(볼가리개)
이른바 몽고발형주가 주류이다. 투구 본체는
縦矧細板을 혁철한 것이며 여기에 錣(수
미부가리개)
・頬当(볼가리개)이 공반된다. 頬当(볼가리개)은 소찰을 가죽으로 연결하였
으며(혁철) 가동성은 그다지 없다. 한편
錣(수미부가리개)는 꿰맨 소찰열을 엮으므로 가동
성이 있다.
頬当(볼가리개)에 사용된 부재는 1매판, 篠状鉄札, 원두소찰(円頭小札), 방두소찰(方
頭小札)이 존재하며 대체로 篠状鉄札→1매판→ 소찰 순이다. 그 후 관모부주에서는 다각
형의 판과 수적형(물방울모양)의 판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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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3.
襟甲・견갑(肩甲)
襟甲은 목 주위를 보호하는 무구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襟甲은 冑錣・볼가리개의 바
깥쪽에 있으며 주로 목 주변을 방어한다. 그러므로
背面 쪽에서는 襟甲의 높이가 15cm
이상으로 높다.
縦矧板을 혁철 또는 병유로 구성된다.
견갑(
肩甲)은 襟甲에 있는 威孔에서 수하(垂下)하는 것으로 어깨를 보호하는 무구이
다. 상세한 것을 알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원두위공(
円頭威孔) 1열 소찰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4. 籠手(팔뚝가리개)
팔 부위를 보호하는 무구. 장식판처럼 생긴
板籠手가 주류이다. 경첩으로 개폐하여 탈
착할 수 있다. 가야지역에서는 복천동10
・11호분 사례가 있으며 신라지역에서는 천마총,
황남대총 남분의 사례가 있다.
5. 臑当(정강이가리개)
다리 부위를 보호하는 무구.
篠状鉄札의 위아래에 작은 소찰이 있는 篠臑当이 알려져
있다. 원두위공(
円頭威孔) 1열의 소찰・篠状鉄札을 이용한 篠臑当이 대부분이다.
Ⅲ. 일본열도의 소찰식갑주
필자는 주로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소찰식갑주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야에
서 출토된 갑주를 비교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기에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1. 소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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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몸을 보호하는 갑옷으로 출토 사례가 가장 많다. 기본적으로
竪上 최상단에서 草摺裾
札을 일련으로 하는 외중식(外重式)소찰갑이다. 소찰갑의 변천에 대해서는 아래의 여러
속성과 관련하여 주로 논의되고 있다.
1) 威技法・威孔列
威技法은 갑주 부재를 세로 방향으로 잇는 기법의 하나. 세로 방향의 부재는 威紐를 매
개로 연결되므로 위아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왜계갑주에서는
打延式
錣・견갑(肩甲)・草摺에만 威技法이 채용되나 소찰식갑주는 대부분의 무구에 威技法이
넓게 채용된다.
소찰식갑주(
小札式甲冑)의 威技法에 대해 살펴 보면 도입 초기부터 한동안은 綴付威
와
通段威a類를 이용한다. 第3威孔이 있는 各段威b類가 주류를 점하는 것은 6세기 중엽
이후로 보인다. 변천을 생각하는 데 지표로 이해되는 속성이다. 특히
清水和明・内山敏
行에 의해 정리・체계화되고 있다(清水 1993, 内山 1987・2003).
그러나 이 속성은 정형화 이후의 자료군은 대응이 되나 일본열도의 도입기~정형화의
자료에 대해서는 대응되지 않는다. 이는 아래의 여러 속성을 사용하여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소찰의 형상
소찰식갑주(
小札式甲冑)에 이용된 소찰의 형상은 다양하다. 이는 사용하는 부위와 연
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요찰
・草摺裾札의 형상
소찰갑(
小札甲)에 사용된 소찰은 대부분 단면형이 만곡 내지는 평찰을 이용하나 허리
부위(요찰)와
草摺의 裾(草摺裾札)에는 특수한 형상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찰(
腰札)・草摺裾札의 형상을 보면 도입기의 五條猫塚古墳例, 宮山古墳 출토품은
만곡된 소찰이 없고 모두 평찰로 구성된다. 이후 이어진
向出山1號墳・長持山古墳 출토
품은 요찰(
腰札)에 Ω字形腰札을 채용하나 草摺裾札에는 평찰을 이용한다. 그 후 埼玉稲
荷山古墳・藤ノ木古墳 출토품은 요찰(腰札)에 Ω字形腰札, 草摺裾札에 Ω字形草摺裾
札을 이용한다. 飛鳥寺塔心礎 출토품에는 요찰(腰札)에 ‘く’字形腰札, 草摺裾札에 평찰
(
平札)을 이용한다. 이는 변천의 지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清水 1993, 塚本 1997, 内
山 2003, 初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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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소찰의 두부(
頭部)형상
소찰의 두부(
頭部)형상으로는 크게 방두(方頭), 원두(円頭), 편원두(扁円頭) 3종이 있
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威孔列을 더하여 소찰갑(小札甲)의 특징을 호칭한다(예 : 円頭威
孔2列小札甲 등).
방두위공(
方頭威孔)2열 소찰・원두위공(円頭威孔)1열 소찰에 대해서는 일본열도 도
입기의 소찰갑(
小札甲) 및 부속구에 많이 보인다. 이를 잇는 자료군에는 원두위공(円頭威
孔)2열 소찰이 많다. 고분에서 출토된 자료는 이 원두위공(円頭威孔)2열 소찰이 가장 출
토 수가 많다. 자료 수와 시기 폭이 넓으므로 일본열도 내에서 정형화된 소찰로 생각된다
(
内山 2003). 6세기 후엽경에는 藤ノ木古墳 등의 편원두위공(扁円頭威孔) 1열 소찰이
보인다. 편원두위공(
扁円頭威孔) 1열 소찰은 고구려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으므로 소위
박재품 러쉬(
内山2012)의 시기에 일본으로 이입된 것이다. 기존의 원두위공(円頭威孔)2
열 소찰도 이 영향을 받았는지 편원두화(
扁円頭化)하는 것 같다.
3) 소찰갑의 변천
이상의 속성으로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소찰갑은 8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소찰갑Ⅰ
類…평찰(平札)만으로 구성된 소찰갑. 만곡된 요찰(腰札)・草摺裾札이 없
다. ex.
五條猫塚古墳
②소찰갑Ⅱ
類…요찰(腰札)만 만곡된 S字形腰札을 이용한 소찰갑. 草摺裾札은 평찰
(
平札). ex. 池山洞32號墳
③소찰갑Ⅲ
類…요찰(腰札)만 만곡된 Ω字形腰札을 이용한 소찰갑. 草摺裾札은 평찰
(
平札). ex. 向出山1號墳
④소찰갑Ⅳ
類……원두위공(円頭威孔)2열 소찰을 이용한 소찰갑. 요찰(腰札)・草摺裾
札은 소찰갑Ⅲ類와 동일. ex. 長持山古墳
⑤소찰갑Ⅴ
類…Ω字形腰札・Ω字形草摺裾札을 이용한 소찰갑. ex. 埼玉稲荷山古
墳, 志段味大塚古墳
⑥소찰갑Ⅵ
類…소찰갑Ⅴ類에 各段威가 채용된 소찰갑. ex. 円山古墳, 祇園大塚山
古墳
⑦소찰갑Ⅶ
類…소찰갑Ⅵ類에 편원형소찰(扁円頭小札)이 채용된 소찰갑. ex. 藤ノ木
古墳, 金鈴塚古墳
⑧소찰갑Ⅷ
類…요찰(腰札)만 만곡된 ‘く’字形腰札을 이용한 草摺裾札에는 평찰(平札)
을 이용한 소찰갑. ex.
飛鳥寺
대체로 소찰갑Ⅰ
類가 이르고 소찰갑Ⅷ類가 느리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계속해서 소
찰갑Ⅱ
類가 존재하고 그 일부가 일본열도로 이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소찰갑Ⅳ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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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Ⅴ類가 등장하는 5세기 말경에 소찰갑Ⅱ類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있다. 또 清
水・内山가 제시한 분류는 대체로 소찰갑Ⅴ~Ⅷ類 계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투구
・錣(수미부가리개)・頬当(볼가리개)
일본열도 내에서 전개된 소찰볼가리개(
小札頬当)・小札錣(소찰수미부가리개)는 모두
충각부주에 동반된 것이다. 최근 발굴된
金井東裏遺跡 출토 횡신판병류(横矧板鋲留)충
각부주가 그 모습을 극명하게 남긴다.
1) 충각부주와 그 부속구
錣(수미부가리개)・頬当(볼가리개)는 투구의 요권판 또는 이에 상응하는 부위에서 아
래로 내려오는 무구이다. 앞서 언급한
群馬縣金井東裏遺跡 출토품은 양호한 상태로 발견
되었으나 이외 다른 출토품은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소찰볼가리개(
小札頬当)・錣(수
미부가리개)를 장착하는 투구에는 요권판에 등간격으로 뚫은 구멍 열이 보이므로 투구를
관찰함으로써 부속구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충각부주에 소찰볼가리개(
小札頬当)・錣(수미부가리개)가 장착된 것은 일본열도에서
소찰갑(
小札甲) 도입기보다는 조금 늦다. 현재 가장 이른 사례는 大阪府長持山古墳으로
보이며 기본적으로 원두위공(
円頭威孔)2열 소찰을 채용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縦矧細板
冑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조립 방법은 기본적으로 같으므로 원류는 역시 縦矧細板冑에
서 구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열도 내에 정착된 후 독자적으로 전개된 것으로 생각된다.
頬当(볼가리개)
頬当(볼가리개)는 기본적으로 綴기법으로 조립하고 내측에 씌운 가죽・포 등을 바깥쪽
으로 접어(
折り返し) 마무리한다. 威기법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위・아래 방향으로 움직
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한 종류의 소찰을 사용하지만
金井東裏遺跡에서 3종류의 소찰로 조립한
사례가 확인되었다. 다른 사례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頬当(볼가리개) 소찰은 구멍을 기준으로 3종으로 분류된다.
①원두형으로 두부(
頭部)에 2열×2공 총 4개, 札足에 2열×1공 총 2개를 뚫은 것.
②원두형으로 두부(
頭部)에 2열×2공 총 4개, 札足에 2열×2공 총 4개를 뚫은 것.
③원두형으로 두부(
頭部)에 2열×2공 총 4개, 札足에 2열×2공과 구멍 3개 총 7개를
뚫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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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이 3유형은 비교적 이른 단계부터 병존한다. 또 이것들은 모두 소형→대형으로 변하므
로 점차 소찰 매수를 생략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②에 대해서는
長持山古墳 출토
품보다 대형화한 계통과 이보다 한 단계 작은 소찰을 이용한 계통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錣(수미부가리개)
頬当(볼가리개)는 威技法을 채용하지 않아 잔존 상황이 좋지 않아도 판별할 수 있으나
錣(수미부가리개)는 다른 소찰식갑주(小札式甲冑)와 마찬가지로 綴技法과 威技法으로
조립하였으므로 판별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소찰갑(
小札甲)에 사용된 소찰과 비교
하면 소형 소찰을 이용한 점은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한 종류의 소찰로 조립된 것 같으나
群馬縣金井東裏遺跡 출토품은 1단과 2단
에 다른 평찰(
平札)을 이용하였고 또 裾札에 Ω字形裾札을 이용한다. 이와 같은 특징은
山の神古墳例과 珠城山3號墳 출토품에서도 확인되어 金井東裏遺跡 출토품은 고훈시대
후기에 특징적으로 소찰을 이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内山 2017).
3. 경갑(
頸甲)・襟甲과 견갑(肩甲)
일본열도에서는 소찰견갑의 존재가 알려져 있으며 그 소찰견갑을 장착한 갑옷으로 경
갑(
頸甲)・襟甲가 있다.
1)
襟甲과 소찰견갑(小札肩甲)
襟甲은 한반도의 무장에서 많이 보이는 무구이다. 襟甲은 小札肩甲과 공반되며 목 주
변과 어깨 주변을 보호하는 방어구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襟甲는 縦矧細板式이 많고
연결기법으로 혁철 또는 병유가 확인된다.
襟의 높이는 최대 15cm 정도로 높다. 한반도
무구에서 목 주변의 방어가
襟甲에 의한 것이 이에 기인한다. (한반도 무구에서는 목 주위
는
襟甲으로 방어하는 것이 큰 이유이다). 투구 부속구인 頬当(볼가리개)・錣(수미부가리
개)는
襟甲 안쪽으로 들어가며 크게 퍼지지 않는다. 투구의 錣(수미부가리개)가 1단 정도
로 짧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일본열도에서는 목 주변을
錣(수미부가리개)로 방어하며 錣(수미부가리개)가
3~4단 정도로 넓게 전개된다. 또 경갑(
頸甲)의 襟部는 10cm도 되지 않고 높이가 낮다. 한
반도에서 확인되는
襟가 높은 襟甲을 일본열도의 무장에 그대로 도입하면 襟甲과 冑錣이
서로 간섭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열도 무장체계로
襟甲를 도입하는 데 襟甲의 높이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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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게 하는 구조의 개량이 이루어진 듯하다(
初村 2010).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襟甲에는 縦矧細板式과 打延式이 존재한다. 打延式襟甲은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打延式甲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襟甲와 동반된 肩甲은 출토상황이 좋지 않아 확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2) 경갑(
頸甲)과 소찰견갑(小札肩甲)
襟甲에 부속된 소찰견갑(小札肩甲)의 영향을 받아 개체 수는 적으나 왜의 경갑(頸甲)
에 소찰견갑(
小札肩甲)을 도입하는 상황이 확인된다.
경갑(
頸甲)에 打延式肩甲을 장착하는 경우 4공 또는 2공을 한 세트로 어깨의 여러 곳
에 뚫는다. 한편 경갑(
頸甲)에 소찰견갑(小札肩甲)을 장착하는 경우 경갑(頸甲)의 어깨에
각각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은 사례가 확인된다. 이를 통해 경갑(
頸甲)에 장착된 견갑
(
肩甲)의 구조를 알 수 있다.
소찰견갑(
小札肩甲)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장 42~51mm, 폭
15~31mm 이며 소찰갑(
小札甲)에 사용된 소찰보다 작다. 또 두부(頭部)형상・威孔列을
보면 방두위공(
方頭威孔)2열, 편원두위공(扁円頭威孔) 2열, 원두위공(円頭威孔)1열, 원
두위공(
円頭威孔)2열이 존재한다. 원두위공(円頭威孔)1열 소찰은 1열뿐이므로 상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威孔2열 소찰에 한정한다면 소찰갑(小札甲)에 사용된 소찰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방두(
方頭)→원두(円頭)로 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4. 籠手(팔뚝가리개)
일본열도의 고훈시대 전기에 한쪽 팔을 보호하기 위한
籠手(팔뚝가리개)가 존재한 것
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威技法을 채용하지 않았으므로 威技法의 채용은 소위 병유기법
도입 이후로 볼 수 있다.
籠手(팔뚝가리개)는 板籠手・筒籠手・篠籠手로 나뉜다. 이 가운데 板籠手는 한반도
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으며 이와 유사한 자료가 일본열도에서도 출토되었다.
筒籠手와 篠
籠手는 한반도에서 출토되지 않아 일본열도의 독자적인 무구로 보인다(橋本 2014c).
출토 사례가 많은
篠籠手는 大阪府長持山古墳 출토품이 유명하나 잔존 상황이 좋지
않아 구조를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石川縣和田山5號墳 출토 篠籠手는 어느 정도 형상
을 복원할 수 있으며 전기의
籠手(팔뚝가리개)에서 보이는 篠状鉄札의 배치이다. 전기형
(
前期型)의篠状鉄札 배치를 기본으로 새로운 綴孔의 配置・威技法을 채용함으로써 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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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甲威의 篠籠手가 창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사용하는 篠状鉄札의 매수에도 크게 차
이가 있어
和田山5號墳 출토품은 15매의 篠状鉄札로 籠手(팔뚝가리개)를 구성하는 것에
반해
長持山古墳例 출토품은 31매로 배가 증가한다. 매 수가 많아야 곡면을 구성하기 쉬
우므로 매수가 적은
和田山5號墳 출토품은 곡면 구성이 어려웠을 것이다. 篠状鉄札 모두
완만하게 굴곡되어 있다. 소수이나 각 부재의 세부에도 차이가 있다.
손보호대(
手甲)의 경우 초기 제품은 원두위공(円頭威孔)1열 소찰을 채용하나 長持山
古墳 사례 이후는 원두위공(円頭威孔)2열로 거의 통일되어 가는 듯하다. 또 藤ノ木古墳
에 보이는 편원두위공(
扁円頭威孔) 1열이 도입되자 동일한 소찰이 손보호대(手甲)에 채
용된다.
5. 정강이가리개(
臑当)
정강이가리개(
臑当)는 篠臑当만 존재한다. 籠手(팔뚝가리개)와 마찬가지로 잔존 상황
이 좋은 않은 사례가 많으므로 구조를 비교할 수 없으나 원두위공(
円頭威孔)1열, 방두위
공(
方頭威孔)2열, 원두위공(円頭威孔)2열, 편원두위공(扁円頭威孔) 1열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방두위공(
方頭威孔)2열의 篠臑当와 원두위공(円頭威孔)1열 篠臑当가 도입
기부터 존재한다. 원두위공(
円頭威孔)1열 篠臑当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사례가 많아 그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방두위공(
方頭威孔)2열 篠臑当는 한반도에서 확인되지 않
으므로 일본열도의 독자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長持山古墳 사례로 보아 원두위공(円頭威
孔)2열 篠臑当로 통일된다. 또 藤ノ木古墳 사례로 보아 편원두위공(扁円頭威孔) 1열 篠
臑当이 출현한다.
Ⅳ.일본열도에서 확인되는 한반도계갑주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소찰식갑주(
小札式甲冑) 가운데 주류는 앞서 언급한 대로이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이와 소찰 형상, 구조가 다른 자료군(소위 한반도계갑주)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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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1. 縦矧板冑와 그 부속구
縦矧細板冑(소위 몽고발형주)와 縦矧板冑(소위 돌기부주・관모부주)가 존재한다. 전
자는 고훈시대 중기에 많고 후자는 고훈시대 후기 후엽에 많다.
縦矧細板冑은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사례가 희소하며 山梨縣かんかん塚古墳, 京都府
美濃山大塚古墳, 奈良縣円照寺墓山1號墳, 熊本縣楢崎山5號墳 등이 있으나 모두 잔존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かんかん
塚古墳出土冑에서는 두정부(頭頂部)의 복발과 지판,
방두소찰을 사용한 소찰볼가리개(
小札頬当), 원두위공(円頭威孔)1열 소찰을 이용한 小
札錣(소찰수미부가리개)가 확인되었다(初村 2010).
縦矧板冑는 群馬縣綿貫観音山古墳에서 확인되는 투구로 한반도에서 많이 확인된다.
당초에는 관모형인 두정부의 장식이 돌기형으로 변화한 것이 아닐까.
内山敏行에 의해 한
반도 자료와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편원두위공(
扁円頭威孔) 1열 소찰갑(小札甲)과 함
께 외래계갑주 세트로 인식되어 한반도 삼국시대 사회의 갑주가 일본열도로 반입된 것으
로 평가한다(
内山 2020).
동일한 투구는 한반도에 존재하므로 제품을 직접 반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2. 한반도계 소찰갑
일본열도 출토 소찰갑 가운데 가야에서 출토된 원두위공(
円頭威孔)1열 평찰(平札)이
며
綴孔를 2열×2공×2곳 총 8공을 뚫은 것을 사용한 소찰갑은 지금까지 여러 사례가 확
인된다.
大阪府高井田山古墳・福岡縣塚堂古墳・佐賀縣潮見古墳 등 S字形요찰이 있
는 사례가 많으나
香川縣王墓山古墳・福岡縣沖ノ島7號祭祀遺跡에서는 Ω字形腰札이
확인된다. 현재로서는 실제로 출토된 수량을 알 수 없으나
奈良縣円照寺墓山1號墳과 愛
知縣おつくり山古墳, 山梨縣三珠大塚古墳 등 각지의 자료 정리가 진행되면서 그 수는
증가할 것으로 추측된다.
또 앞서 언급한
綿貫観音山古墳 사례처럼 외래계투구와 세트인 소찰갑도 외래계로 평
가된다(
内山 2012). 다만 일본열도제라는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内山 2020).
99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Ⅴ. 가야의 왜계소찰식갑주
한편 가야에도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갑주와 동일한 것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충각부주
와 단갑을 비롯한 대금식(
帯金式)・打延式甲冑가 유명하나 왜의 소찰식갑주(小札式甲
冑)(이하, 왜계소찰식갑주)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양호한 세트로 유명한 것이 송학동1A-1호분 갑주 세트이다. 소찰갑(
小札甲)・篠籠手
・높이가 낮은 襟甲・견갑(肩甲)이 확실하며 篠臑当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f자형경판
부비와 검릉형행엽·쌍검릉형행엽 등 왜계유물이 포함된 점도 주목된다.
또 연산동M8호분 출토 소찰도
向出山1號墳 사례와 마찬가지로 경갑(頸甲)에 장착된
소찰견갑(
小札肩甲)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수이기는 하나 왜계소찰식갑주는 어떤 움
직임 속에서 가야지역으로 반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Ⅵ. 소찰식갑주의 변용
・전개로 본 가야・왜의 관계성
가야지역에서는 주로
頬当(볼가리개)・수미부가리개(錣)에 부속된 縦矧板冑과 소찰견
갑(
小札肩甲)付属襟甲, 찰갑이 많이 확인되며 여기에 板籠手・篠臑当가 공반된 사례가
산견된다. 특히 찰갑에서 보이는 원두위공(
円頭威孔)1열, 철공(綴孔)이 8개 있는 소찰과
S
字形腰札은 특징적이다. 시기가 내려오면 Ω字形요찰을 채용하는 변화도 보이나 원두
위공(
円頭威孔)1열이며 철공(綴孔)이 8개 있는 소찰을 계속해서 이용한 것은 일관된 것
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소찰식갑주(
小札式甲冑)는 출현하였을 당시에는 원류를 알
수 없는데 가야와 다른 구조·부재를 이용한 소찰갑이었던 것 같다. 다만 일본열도에서 원
두위공(
円頭威孔)1열 Ω字形腰札을 채용한 배경에 가야지역의 S字形腰札・Ω字形腰
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内山 2008b).
또 일본열도에 존재하지 않은 무구―
襟甲・臑当(정강이가리개)-는 가야지역의 것과
기본 구조가 같다. 그러면서도 왜계갑주 속에서 적합한 형태로 조금씩 개변하여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初村 2010).
가야에서는 왜계대금식
・打延式甲冑과 함께 소찰식갑주(小札式甲冑) 일부가 도입된
것은 확실하나 왜의 소찰식갑주(
小札式甲冑) 구조를 채용 또는 원용한 점은 현재 확인하
100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기 어렵다. 한편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자료는 가야지역을 포함한 한반도계 갑주의 구조를
자신의 무장체계로 융화시켜 도입하고자 한 것 같다.
맺음말
101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朝鮮半島系札甲
1:釜山福泉洞 10・11 号墳
2:大阪府高井田山古墳
3:佐賀県潮見古墳
4:香川県王墓山古墳
倭系小札甲
5:奈良県五條猫塚古墳
6:兵庫県宮山古墳
7:福井県向出山1号墳
8: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9:大阪府長持山古墳
10:京都府城陽市平川
11: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12:奈良県珠城山3号墳
13:奈良県藤ノ木古墳
2
4
5
6
7
8
9
10
11
12
13
0
1:6
20㎝
1
3
図1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札甲(小札甲)
도1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찰갑(소찰갑)
10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2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찰갑의 변천
0
1:8
20㎝
6世紀
倭系小札甲
5世紀
1
円頭威孔1列+綴孔8孔
1:東莱福泉 10・11 号墳
2:大阪府高井田山古墳
3:奈良県市尾宮塚古墳
4:香川県王墓山古墳
方頭威孔1列;円頭威孔1列
5:奈良県五條猫塚古墳
6:福井県向出山1号墳
7:兵庫県宮山古墳(第2主体)
8:山梨県豊富王塚古墳
湾曲腰札の影響
円頭威孔1列
+綴孔8孔
2
3
4
5
6
7
8
9
10
11
12
13
方
頭威孔
2
列
+円頭威孔1列
A
方
頭威孔
2
列
+円頭威孔1列
B
14
扁円頭威孔1列
円頭威孔
2
列
方頭威孔2列+円頭威孔2列
9: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円頭威孔2列
10:大阪府長持山古墳
11:京都府城陽市平川
12: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13:奈良県珠城山3号墳
扁円頭威孔1列
14:奈良県藤ノ木古墳
朝鮮半島系札甲
(日本列島出土)
(朝鮮半島出土)
図2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札甲の変遷
103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0
1:6
20
㎝
2
3
4
5
6
1
7
板籠手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滋賀県新開 1 号墳
筒籠手
3:岡山県天狗山古墳
篠籠手
4:石川県和田山5号墳
5:大阪府長持山古墳
6:愛知県志段味大塚古墳
7:奈良県藤ノ木古墳
2
1:陜川玉田 28 号墳
2:陜川玉田 35 号墳
3:福岡県稲童 21 号墳
4:兵庫県宮山古墳
5:大阪府長持山古墳
6:奈良県藤ノ木古墳
1
2
3
4
5
6
0
1:6
20
㎝
図3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籠手
図4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臑当
도3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팔뚝가리개(
籠手)
도4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정강이가리개(
臑当)
10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5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팔뚝가리개(
籠手)·정강이가리개(臑当)의 변천
0
1:8
20㎝
板籠手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滋賀県新開 1 号墳
筒籠手
3:岡山県天狗山古墳
篠籠手
4:石川県和田山5号墳A槨
5:大阪府長持山古墳
6:滋賀県円山古墳
7:奈良県藤ノ木古墳
板
籠手
篠
籠手
筒籠手
円頭威孔1列手甲
古墳時代後期
籠
手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臑
当
篠
臑当
1
2
3
4
5
7
6
円頭威孔1列
方
頭威孔
2
列
⬇
⬇
⬇
⬇
篠臑当
8:陜川玉田 28 号墳
9:滋賀県新開 1 号墳
10:福岡県稲童 21 号墳
11:兵庫県宮山古墳
12:石川県和田山5号墳A槨
13:大阪府長持山古墳
14:愛知県大須二子山古墳
15:群馬県綿貫観音山古墳
16:奈良県藤ノ木古墳
手甲構造の継承
円頭威孔
2
列手甲
扁円頭威孔1列手甲
各段威の採用
円頭威孔
2
列
朝鮮半島系甲冑
威技法・綴第2技法の採用
倭系甲冑
古墳時代前期籠手の篠状鉄札構造の採用
⬇
8
9
10
11
12
13
14
16
扁円頭威孔1列
図5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籠手・臑当の変遷
105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10
朝鮮半島系襟甲(背の高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1:玉田M3号墳 2:福泉洞 10・11 号墳
縦矧板革綴襟甲 3・4:福泉洞 21・22 号墳
5:林堂洞G5号墳
倭系襟甲(背の低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6:祇園大塚山古墳
縦矧板革綴襟甲 7:松鶴洞 1A-1 号墳 8:山の神古墳 9:藤ノ木古墳
打延式襟甲 10:豊富王塚古墳
0
1:6
20
㎝
5
1
2
3
4
5
7
6
8
9
図6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襟甲
打延式頸甲
肩甲威孔1列 1:向出山1号墳
肩甲威孔 2 列 2:陵山古墳 3:長木古墳
小札・打延式肩甲併用
4:正崎2号墳 5:蓮山洞M8号墳
0
1:6
20㎝
1
2
3
4
5
図7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肩甲を伴う頸甲
10
朝鮮半島系襟甲(背の高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1:玉田M3号墳 2:福泉洞 10・11 号墳
縦矧板革綴襟甲 3・4:福泉洞 21・22 号墳
5:林堂洞G5号墳
倭系襟甲(背の低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6:祇園大塚山古墳
縦矧板革綴襟甲 7:松鶴洞 1A-1 号墳 8:山の神古墳 9:藤ノ木古墳
打延式襟甲 10:豊富王塚古墳
0
1:6
20
㎝
5
1
2
3
4
5
7
6
8
9
図6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襟甲
打延式頸甲
肩甲威孔1列 1:向出山1号墳
肩甲威孔 2 列 2:陵山古墳 3:長木古墳
小札・打延式肩甲併用
4:正崎2号墳 5:蓮山洞M8号墳
0
1:6
20㎝
1
2
3
4
5
図7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肩甲を伴う頸甲
도6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襟甲
도7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소찰견갑을 동반한 경갑(
頸甲)
10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
1:8
20
㎝
襟 甲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3:奈良県円照寺墓山1号墳
4:福岡県山の神古墳
5:奈良県藤ノ木古墳
6:山梨県豊富王塚古墳
7:京都府城陽市平川
縦
矧板襟
甲
古墳時代後期
襟
甲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頸甲付属小札肩甲
1
打延式
襟
甲
6
3
襟
甲付属小札肩甲
打延式肩甲
+小札肩甲
小札肩甲
頸
甲
円頭威孔
1
列
円頭威孔
2
列
扁円頭威孔
1
列
方頭威孔
2
列~円頭威孔
2
列
円頭威孔
1
列
襟甲付属小札肩甲
8: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9:奈良県円照寺墓山1号墳
10:京都府城陽市平川
11:大阪府長持山古墳
12:茨城県三昧塚古墳
13:奈良県藤ノ木古墳
2
3
4
5
6
7
8
9
10
11
12
13
頸 甲
14:福井県向出山1号墳
15:岡山県正崎2号墳
頸甲付属小札肩甲
16:福井県向出山1号墳
17:韓国蓮山洞M8号墳
18:岡山県正崎2号墳
19:宮崎県下北方5号地下式横穴墓
20:福岡県稲童 21 号墳
21: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22:福岡県稲童 21 号墳
14
15
16
17
18
19
20
21
22
図8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肩甲を伴う襟甲・頸甲の変遷
도8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소찰견갑을 동반한
襟甲·경갑(頸甲)의 변천
107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一枚板頬当
(咸安道項里 36 号墳)
板革綴頬当
(金海大成洞 14 号墳)
篠状鉄札頬当
(玉田 28 号墳)
小札頬当
(福泉洞 21・22 号墳)
小札頬当
(玉田8号墳)
小札頬当
(金井東裏遺跡)
小札頬当
(山梨県かんかん塚古墳)
0
1:6
20
㎝
図9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頬当・錣を伴う冑
도9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소찰
頬当(볼가리개)·錣(수미부가리개)를 동반한 투구
108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도10 한반도 및 일본열도 출토 소찰
頬当(볼가리개)·錣(수미부가리개)를 동반한 투구의 변천
0
1:8
20
㎝
冑・頬当
1:東萊福泉洞 21・22 号墳
2:山梨県かんかん塚古墳
3:群馬県金井東裏遺跡
4:千葉県金鈴塚古墳
5:群馬県井出二子山古墳
6:埼玉県永明寺古墳
7:栃木県益子天王塚古墳
8:大阪府長持山古墳
9:愛知県大須二子山古墳
10:埼玉県将軍山古墳
11:福岡県山の神古墳
古墳時代後期
襟
甲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衝角付冑
小札
頬
当
2
1
横
矧板鋲
留衝角付
冑
竪
矧
広
板鋲
留衝角付
冑
小札頬当・
錣
を伴う
小札頬当
綴孔
2
孔
綴孔4孔
綴孔4孔+下搦孔
3
4
5
6
7
9
10
11
8
図 10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頬当・錣を伴う冑の変遷
109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Ⅰ. はじめに
小札と呼ばれる小鉄板を多数使用する武具―札式甲冑、小札式甲冑―は、5世紀
代に大陸・朝鮮半島より日本列
島へもたらされた武具である。それぞれの地域で導入されて以降、次第に武具の
中心として用いられてきたもので
ある。ただし、これまでは資料の遺存状況の制約から、各資料の構造の把握やそ
もそもの用途の認識すら難しいと
いう状況があった。
近年、韓国・日本列島で、出土状況等良好な資料が出土していることに加え、既
往の資料の再整理や研究者の認
識の高まりに応じて、札式甲冑の基本的な構造の解明および既存の資料の再検討
も合わせて進んでいる。
微力ながら日本列島出土資料と加耶地域出土資料の比較から、両者の関係性を考
える。
Ⅰ. はじめに
Ⅱ. 加耶の札式甲冑
Ⅲ. 日本列島の小札式甲冑
목 차
古代札甲からみた倭と加耶
初村武寛
公益財団法人元興寺文化財研究所
110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Ⅱ. 加耶の札式甲冑
加耶地域より出土した札式甲冑としては、札甲(胴甲)、縦矧板冑、襟甲、肩
甲、籠手、臑当が存在する。加耶
地域に限らず、新羅地域でも同様の資料が出土しているが、ここでは主に加耶地
域の甲冑について触れる。なお、
加耶地域出土の甲冑であっても日本列島出土甲冑の影響の大きいものなどはここ
では触れない。
1.札甲
竪上最上段から草摺裾札を一連とする外重式の札甲が出土している。多くの札甲
にみられる特徴としては、①円
頭威孔1列の小札を使用、②綴孔は8孔を有する、③腰札はS字形に湾曲したS
字形腰札を用いるといった特徴が
ある。威技法としては、通段威・綴付威とともに、早いうちから第3威孔を有す
る各段威b類もしくは通段威b類
が用いられる。
福泉洞21・22 号墳のように腰札のみが出土する事例があるが、観察すると革製
の小札が使用されている痕跡が
みられる。つまり、鉄製腰札のみではなく、鉄製腰札+革製平札の組み合わせの
札甲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
2.冑・錣・頬当
いわゆる蒙古鉢形冑が主体をなす。冑本体は縦矧細板を革綴したもので、これに
頬当と錣が伴う。頬当は小札を
革綴したもので、大きな可動性は有さない。一方で錣については綴じられた小札
列を威すので、可動性を有する。
頬当に使用される部材は、一枚板、篠状鉄札、円頭小札、方頭小札が存在し、概
ね篠状鉄札→一枚板→
111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3.襟甲・肩甲
襟甲は首回りの武具である。朝鮮半島出土の襟甲は、冑錣・頬当の外側に展開
し、主として首回りの防御を行う。
そのため、背面側で襟甲が高さ15cm 以上と高い。縦矧板を革綴もしくは鋲留す
ることで構成される。
肩甲は襟甲にある威孔から垂下されるもので、肩部を守る武具である。詳細不明
のものも多いが、円頭威孔1列
小札を用いる事例が多いようである。
4.籠手
腕部を守る武具。立飾りのような板をもつ板籠手が主流である。蝶番による開閉
により、着脱を可能とする。加
耶地域では福泉洞10・11 号墳例が知られているが、新羅地域で天馬塚、皇南大
塚南墳等での出土も知られる。
5.臑当
脚部を守る武具。篠状鉄札の上下に小型の小札を伴う篠臑当が知られる。円頭威
孔1列の小札・篠状鉄札を用い
た篠臑当が大部分を占める。
Ⅲ. 日本列島の小札式甲冑
筆者は主に日本列島より出土する小札式甲冑について調査を行っている。そのた
め、加耶出土の甲冑を比べて多
くの紙幅を割くが、ご容赦願いたい。
1. 小札甲
11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胴部の甲であり、最も出土数が多い。基本的に竪上最上段から草摺裾札を一連と
する外重式小札甲である。小札
甲の変遷については以下の諸属性について主に議論がなされている。
1)威技法・威孔列
威技法は、甲冑の部材を縦方向に繋ぐ技法の一つ。縦方向の部材は威紐を介して
繋がっているだけなので、上下
方向の可動性を有する特徴がある。倭系甲冑では打延式錣・肩甲・草摺にのみ威
技法が採用されているが、小札式
甲冑については大部分の武具に威技法が広く採用されている。
小札式甲冑における威技法についてみると、導入当初からしばらくは綴付威や通
段威a類を用いる。第3威孔を
有する各段威b類が主流となるのは6世紀中葉以降とみられる。変遷を考える上
での指標として捉えられている属
性である。特に、清水和明・内山敏行により整理・体系化されている(清水
1993、内山1987・2003)。
しかし、この属性のみでは定型化以後の資料群については対応可能であるが、日
本列島における導入期~定型化
の資料については対応不可であった。その点は以下の属性を用いて検討可能と考
える。
2)小札の形状
小札式甲冑に用いられる小札は、多様な形状のものがある。それは、使用する部
位による差異、年代による差異
がある。これらは、
i) 腰札・草摺裾札の形状 小札甲に使用される小札は、大部分には断面形の湾
曲しない平札が用いられるが、
腰の部分(腰札)や草摺の裾(草摺裾札)には特殊な形状のものを使用すること
が知られている。
腰札・草摺裾札の形状についてみれば、導入期の五條猫塚古墳例、宮山古墳例で
は湾曲した小札を持たず、すべ
て平札で構成される。これに継続する向出山1号墳例・長持山古墳例では、腰札
にΩ字形腰札を採用するが草摺裾
札には平札を用いる。その後、埼玉稲荷山古墳例・藤ノ木古墳例などでは腰札に
Ω字形腰札、草摺裾札にΩ字形草
摺裾札を用いる。飛鳥寺塔心礎例では腰札に「く」字形腰札、草摺裾札に平札を
用いる。これらは変遷の指標の一
113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つとされる(清水1993、塚本1997、内山2003、初村2011)。
ii) 小札の頭部形状 小札の頭部形状としては、おおきく方頭、円頭、扁円頭の
3種がある。これに先述した威
孔列を加えた形で小札甲の特徴を呼称される。
方頭威孔2列小札・円頭威孔1列小札については日本列島における導入期の小札
甲および付属具に多く見られる。
これに継続する資料群には円頭威孔2列小札が多い。古墳出土の資料においては
この円頭威孔2列小札が最も出土
数が多い。資料数や時期幅が広いことから、日本列島内で定型化した小札とも呼
ばれる(内山2003)。6世紀後葉
頃には藤ノ木古墳などの扁円頭威孔1列小札がみられる。扁円頭威孔1列小札は
高句麗出土例にもみられるもので、
いわゆる舶載品ラッシュ(内山2012)の時期に日本列島にもたらされたものであ
る。既存の円頭威孔2列小札も
この影響を受けてか、扁円頭化するようである。
3)小札甲の変遷
以上の属性から、日本列島出土の小札甲は8類型に分類可能である。
①小札甲Ⅰ類…平札のみで構成された小札甲。湾曲した腰札・草摺裾札を持た
ない。 ex. 五條猫塚古墳
②小札甲Ⅱ類…腰札のみ湾曲したS字形腰札を用いた小札甲。草摺裾札は平
札。 ex. 池山洞32 号墳
③小札甲Ⅲ類…腰札のみ湾曲したΩ字形腰札を用いた小札甲。草摺裾札は平
札。 ex. 向出山1号墳
④小札甲Ⅳ類…円頭威孔2列小札を用いた小札甲。腰札・草摺裾札は小札甲Ⅲ
類と同様。 ex. 長持山古墳
⑤小札甲Ⅴ類…Ω字形腰札・Ω字形草摺裾札を用いた小札甲。 ex. 埼玉稲荷
山古墳、志段味大塚古墳
⑥小札甲Ⅵ類…小札甲Ⅴ類の組成に、各段威が採用された小札甲。 ex. 円山
古墳、祇園大塚山古墳
⑦小札甲Ⅶ類…小札甲Ⅵ類の組成に、扁円頭小札が採用された小札甲。 ex.
藤ノ木古墳、金鈴塚古墳
⑧小札甲Ⅷ類…腰札のみ湾曲した「く」字形腰札を用い草摺裾札には平札を用
いた小札甲。 ex. 飛鳥寺
概ね小札甲Ⅰ類が古く、小札甲Ⅷ類が新しい。しかし、朝鮮半島では継続的に小
札甲Ⅱ類が存在し、その一部が
11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日本列島にもたらされているものと思われる。そのため、小札甲Ⅳ類・Ⅴ類の時
期となる5世紀末頃に集中して小
札甲Ⅱ類が出土することがある。また、清水・内山が提示した分類は、概ね小札
甲Ⅴ~Ⅷ類の系統として理解できる。
2.冑・頬当・錣
日本列島内で展開する小札頬当・小札錣は、いずれも衝角付冑に伴うものであ
る。近年発掘された金井東裏遺跡
出土横矧板鋲留衝角付冑がその姿を克明に残す。
1)衝角付冑とその付属具
頬当・錣は、冑の腰巻板もしくはそれに相当する部位から垂下される武具であ
る。先述の群馬県金井東裏遺跡の
事例では良好な遺存状態が確認されたが、他の事例では同様の状態のものは少な
い。しかし、小札頬当・錣を装着
する冑には腰巻板に等間隔に穿たれた穿孔列がみられるので、冑の観察から付属
具の存在を推定することができる。
衝角付冑に小札頬当・錣が装着されるのは日本列島における小札甲導入期からは
少し遅れる。今のところ初現は
大阪府長持山古墳頃とみられ、基本的に円頭威孔2列小札を採用する。この点は
先の縦矧細板冑とは異なる点であ
る。しかし基本的な組み上げ方法は同じであるため、源流としてはやはり縦矧細
板冑等に求められるものと思われ、
日本列島内への定着後、独自に発展したものと思われる。
i) 頬当 頬当については、基本的に綴技法で組み上げ、裏側に被せた革・布な
どを表側に折り返し覆輪とする。
威技法を使っていないため、上下方向の可動性を持たない。
基本的には1種類の小札を組み上げるものであるが、金井東裏遺跡例では3種類
の小札を組み上げている事が確
認された。他の例では同様のものは知られておらず、現状では特異な例として考
えておきたい。
頬当の小札は、穿孔により以下の3種に分けられる。
①円頭形で、頭部に2列×2孔の計4孔、札足に2列×1孔の計2孔を穿つも
の。
115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②円頭形で、頭部に2列×2孔の計4孔、札足に2列×2孔の計4孔を穿つも
の。
③円頭形で、頭部に2列×2孔の計4孔、札足に2列×2孔と3孔の計7孔を穿
つもの。
これら3つの類型は比較的早い段階から併存している。また、これらはいずれも
小型→大型の変遷を辿るので、
小札の枚数の省略可として捉えることができる。ただし②については長持山古墳
例より大型化していく系統とこれ
より一回り小さな小札を用いる系統に細分可能なようである。
ii) 錣 頬当については威技法を採用しない特徴があるため、遺存状況が良好で
なくても判別可能であるが、錣
については他の小札式甲冑と同様に綴技法と威技法で組み上げるものであるため
判別不可能なものが多い。しかし、
小札甲に使用される小札と比べると小型の小札を用いる点は特徴の一つと言え
る。
元々1種の小札で組み上げられていたようだが、群馬県金井東裏遺跡例では、1
段目と2段目で異なる平札を用
い、さらに裾札にはΩ字形の裾札を用いる。こうした特徴は山の神古墳例や珠城
山3号墳例などでも認められてお
り、金井東裏遺跡例は古墳時代後期に特徴的な小札の使い方が認められる事例と
評価された(内山2017)。
3-3.頸甲・襟甲と肩甲
日本列島では、小札肩甲の存在が知られるとともに、その小札肩甲を装着する甲
として頸甲・襟甲がある。
1)襟甲と小札肩甲
襟甲は、朝鮮半島の武装に多くみられる武具である。これには小札肩甲が伴い、
首回り~肩回りを守る防具となる。
朝鮮半島出土の襟甲は縦矧細板式のものが多く、連結技法には革綴もしくは鋲留
が認められる。襟の高さは最大
15cm 程度と高い。朝鮮半島の武具において、首回りの防御が襟甲に拠るもので
あることがこれに起因する。冑の
付属具である頬当・錣については襟甲の内側に入り込むこととなり、広く展開し
11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ない。冑の錣は1段程度と短いこ
ともこれを裏付ける。
一方で、日本列島出土の首回りの防御は概ね錣に拠るものであり、錣が3~4段
程度と広く展開する。また、頸
甲の襟部は10cm にも満たず、背が低い。朝鮮半島にみられる襟の高い襟甲を日
本列島の武具へそのまま導入すると、
襟甲と冑錣が干渉しあうこととなる。そのため、日本列島の武具体系へ襟甲を導
入するに当たり、襟甲の高さを低
くするという構造の改変が行われたようである(初村2010)。
日本列島出土の襟甲には縦矧細板式のものと打延式のものとが存在する。打延式
襟甲には日本列島で出土する打
延式甲冑の影響を受けているものと思われる。
襟甲に伴う肩甲については、出土状況が良好なものなどが少なく、確定できるも
のは多くない。
2)頸甲と小札肩甲
襟甲に付属する小札肩甲の影響を受け、数は少ないながら倭の頸甲へ小札肩甲を
導入するものが確認されている。
頸甲に打延式肩甲を装着する場合、4孔もしくは2孔を一組とした穿孔が数か所
ずつ両肩に穿たれる。一方で頸
甲に小札肩甲を装着する場合、頸甲の両肩にそれぞれ一定間隔で穿孔列が認めら
れる。これにより、頸甲に装着さ
れた肩甲の構造を知ることができる。
小札肩甲については、現在知られているものに限れば、全長42 ~ 51mm、幅15
~ 31mm であり、小札甲に使用さ
れる小札よりも小さい。また、頭部形状・威孔列についてみると、方頭威孔2
列、扁円頭威孔2列、円頭威孔1列、
円頭威孔2列のものが存在する。円頭威孔1列小札は1例のみであるため詳細は
不明であるが、威孔2列小札に限
れば、小札甲に使用された小札の変化と同様に方頭→円頭という過程での変遷が
最も理解しやすい。
3-4.籠手
日本列島においては、古墳時代前期に片腕用の籠手の存在が知られる。これらに
117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ついては威技法は未採用であり、
威技法の採用は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となる。
籠手は、板籠手・筒籠手・篠籠手が知られる。このうち、板籠手については朝鮮
半島での出土が知られており、
それらに準ずる資料が日本列島内でも出土している。筒籠手や篠籠手については
朝鮮半島での出土事例がなく、日
本列島独自の武具とみられる(橋本2014c)。
出土事例が多い篠籠手については、大阪府長持山古墳など著名な事例がである
が、遺存状況の良好な事例が少な
く、構造の比較は困難であった。しかし、石川県和田山5号墳の篠籠手は一定程
度の形状を復元できるものであり、
前期の籠手にみられるような篠状鉄札の配置をみせる。前期型の篠状鉄札の配置
をベースとし、新しい綴孔の配置・
威技法の採用することで手甲威の篠籠手が創出された可能性が推測される。ま
た、使用する篠状鉄札の枚数にも大
きな差があり、和田山5号墳例では15 枚の篠状鉄札で籠手を構成するのに対
し、長持山古墳例では31 枚と倍増す
る。枚数が多ければ曲面を構成しやすいが、枚数の少ない和田山5号墳例ではこ
れが困難であったのであろう。篠
状鉄札それぞれに緩くカーブがつけてある。わずかな点だが、個々の部材の細部
にも違いがある。
手甲については、初期の事例では円頭威孔1列小札を採用するが、長持山古墳以
降は円頭威孔2列にほぼ統一さ
れていくようである。また、藤ノ木古墳にみられる扁円頭威孔1列が導入される
と、同様の小札が手甲に採用される。
3-5.臑当
臑当については、篠臑当が存在するのみである。籠手と同様に遺存状況が良くな
い事例が多いため構造の比較等
まで行えていないが、円頭威孔1列、方頭威孔2列、円頭威孔2列、扁円頭威孔
1列に大きく分類可能である。
このうち、方頭威孔2列の篠臑当と円頭威孔1列の篠臑当が導入期より存在す
る。円頭威孔1列の篠臑当は朝鮮
118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半島での出土も数多く知られておりその影響を受けているとみられるが、方頭威
孔2列の篠臑当は朝鮮半島では見
られなもので、日本列島独自のものと推測される。長持山古墳例などより円頭威
孔2列篠臑当に統一される。また、
藤ノ木古墳例などより扁円頭威孔1列篠臑当が出現する。
4.日本列島で認められる朝鮮半島系甲冑
日本列島内で出土する小札式甲冑のうち、主流となるものは先述した通りであ
る。しかし、少数ながらもこれら
とは小札の形状・構造を異にする資料群―いわゆる朝鮮半島系甲冑―群が存在す
る。
1)縦矧板冑とその付属具
縦矧細板冑(いわゆる蒙古鉢形冑)と縦矧板冑(いわゆる突起付冑・冠帽付冑)
が存在する。前者は古墳時代中
期に多く、後者は古墳時代後期後葉頃に多い。
縦矧細板冑は日本列島出土例は稀少であり、山梨県かんかん塚古墳、京都府美濃
山大塚古墳、奈良県円照寺墓山1号墳、熊本県楢崎山5号墳などがあるが、いずれ
も遺存状況は良好ではない。しかし、かんかん塚古墳出土冑では、
頭頂部の伏鉢や地板、方頭小札を用いた小札頬当、円頭威孔1列小札を用いた小
札錣が認められた(初村2010)。
縦矧板冑は、群馬県綿貫観音山古墳例などにみられる冑であり、朝鮮半島に多く
認められる冑である。当初は冠
帽形であった頭頂部の飾りが突起形に変化したものであろうか。内山敏行により
朝鮮半島の資料との対比が行われ
ている。これとセットとなる扁円頭威孔1列の小札甲とあわせて外来系甲冑セッ
トとして認識されており、当選半
島三国時代社会の甲冑の在り方が日本列島に持ち込まれたものと評価している
(内山2020)。
同様の冑は朝鮮半島に存在しており、そうした製品を直接搬入したものと推測さ
れる。
2)朝鮮半島系小札甲
日本列島出土小札甲のうち、加耶で出土する円頭威孔1列の平札で、かつ綴孔を
2列×2孔×2か所の計8孔を
119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穿つものを使用した小札甲は、これまで複数出土していることが確認されてい
る。大阪府高井田山古墳・福岡県塚
堂古墳・佐賀県潮見古墳などS字形腰札を有する事例が多いが、香川県王墓山古
墳・福岡県沖ノ島7号祭祀遺跡な
どの事例ではΩ字形腰札を有する。現状でその実数を知りえないが、奈良県円照
寺墓山1号墳や愛知県おつくり山
古墳、山梨県三珠大塚古墳など、各地の資料の整理が進むにつれて、数は増える
ものと推測される。
また、先述した綿貫観音山古墳例のように、外来系冑とセットとなる小札甲も外
来系として評価される(内山
2012)。しかし、日本列島製という意見を完全に排除することも難しい(内山
2020)。
5.加耶地域における倭系小札式甲冑
一方で、加耶地域にも日本列島で出土する甲冑と同様のものが存在する。多くは
衝角付冑や短甲をはじめとした
帯金式・打延式甲冑が著名であるが、倭の小札式甲冑(以下、倭系小札式甲冑)
の存在も一定程度知られる。
良好な甲冑セットとして知られるのが、松鶴洞1A-1 号墳の甲冑セットである。
小札甲・篠籠手・背の低い襟甲・
肩甲が確実視でき、篠臑当も存在する可能性がある。f字形鏡板付轡や剣菱形杏
葉・双剣菱形杏葉など倭系遺物が
含まれる点も注目される。
また、蓮山洞M8号墳出土小札も、向出山1号墳例と同様、頸甲に装着される小
札肩甲とみられよう。
少数ながら、倭の小札式甲冑の一部は、何らかの動きの中で加耶地域にもたらさ
れていたものと推測される。
6.小札式甲冑の受容・展開からみる加耶・倭の関係性
加耶地域では主に頬当・錣付属の縦矧板冑と小札肩甲付属襟甲、札甲が多く見ら
れ、これに板籠手・篠臑当が伴
120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う事例が散見される。特に札甲にみられるような円頭威孔1列で綴孔を8孔があ
る小札とS字形腰札は特徴的であ
る。時期が下るとΩ字形腰札の採用などの変化も見られるが、円頭威孔1列で綴
孔を8孔がある小札を継続して用
いる点は一貫しているように見受けられる。
一方で日本列島出土の小札式甲冑は、出現当初には未だ源流は不明ながら、加耶
とは異なる構造・部材を用いた
小札甲であったようである。しかし、日本列島における円頭威孔1列Ω字形腰札
を採用した背景には、加耶地域の
S字形腰札・Ω字形腰札の影響を受けている可能性も十分に想定できる(内山
2008b)。
また、日本列島に存在しなかった武具―襟甲・臑当については、加耶地域に類例
が見られるものと基本構造は一
致するものを採用している。しかしそうしながらも、倭系甲冑の中に適合する構
造への改変を少なからず加えてい
ることにより導入が可能となった(初村2010)。
加耶においては、倭系の帯金式・打延式甲冑に合わせて小札式甲冑の一部がもた
らされていたことは確実である
が、倭の小札式甲冑の構造を採用もしくは援用した点は現状では見えにくい。一
方で、日本列島出土資料からは、
加耶地域を含む朝鮮半島系甲冑の構造を自身の武具体系へと融和させる形での導
入を進めたようである。
おわりに
121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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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学―藤田和尊さん追悼論文集―』ナベの会考古学論集第1集 pp.175-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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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学習院考古会 p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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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号墳』復刻 甲冑の整理・保存処理報告』山陽町文化財調査報告1 山陽町教育
委員会 pp.95-101
12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橋本達也2014a「城ノ山古墳の襟甲」『堺市博物館研究報告』第33 号 堺市博物
館 pp.74-80
・橋本達也2014b「中期甲冑の表示する同質性と差異性―変形板短甲の意義―」
『七観古墳の研究―1947 年・1952 年出土遺物の再検討―』 京都大学大学院文学
研究科 pp.251-272
・橋本達也2014c「古墳時代中期甲冑における朝鮮半島系要素の導入―山の神古墳
の甲冑付属具とその評価を中心に―」『山の神古墳と「雄略朝」期をめぐる諸問題
研究発表資料集』 九州大学大学院人文科学研究院考古学研究室 pp.59-64
・初村武寛2010 「古墳時代中期における小札式付属具の基礎的検討―付属具を構
成する小札の用途と装着部位―」『洛北史学』第12 号 洛北史学会 pp.92-118
・初村武寛2011a 「一夜塚古墳出土甲冑の位置付け」『一夜塚古墳出土遺物調査
報告書』 朝霞市教育委員会 pp.69-82
・初村武寛2011b 「古墳時代中期における小札甲の変遷」『古代学研究』192 古
代学研究会 pp.1-19
・初村武寛2015a 「日本列島における導入期小札甲の構造と副葬の背景」『研究
紀要』19 号 由良大和古代文化研究協会 pp.1-36
・初村武寛2015c 「五條猫塚古墳出土小札甲の構造と甲冑の装飾―小札甲と帯
金具の関係性に着目して―」『五條猫塚古墳の研究』総括編 奈良国立博物館
pp.303-312
・初村武寛2018 「小札式甲冑の研究史と導入・展開の諸様相」『古代武器研究』
vol.14 古代武器研究会 pp.47-76
・初村武寛2019「頸甲と小札肩甲」『和の考古学―藤田和尊さん追悼論文集―』
ナベの会 pp.163-174
・羽曳野市教育委員会2010『庭鳥塚古墳発掘調査報告書』羽曳野市埋蔵文化財調査
報告書66
123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朝鮮半島系札甲
1:釜山福泉洞 10・11 号墳
2:大阪府高井田山古墳
3:佐賀県潮見古墳
4:香川県王墓山古墳
倭系小札甲
5:奈良県五條猫塚古墳
6:兵庫県宮山古墳
7:福井県向出山1号墳
8: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9:大阪府長持山古墳
10:京都府城陽市平川
11: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12:奈良県珠城山3号墳
13:奈良県藤ノ木古墳
2
4
5
6
7
8
9
10
11
12
13
0
1:6
20㎝
1
3
図1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札甲(小札甲)
124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
1:8
20㎝
6世紀
倭系小札甲
5世紀
1
円頭威孔1列+綴孔8孔
1:東莱福泉 10・11 号墳
2:大阪府高井田山古墳
3:奈良県市尾宮塚古墳
4:香川県王墓山古墳
方頭威孔1列;円頭威孔1列
5:奈良県五條猫塚古墳
6:福井県向出山1号墳
7:兵庫県宮山古墳(第2主体)
8:山梨県豊富王塚古墳
湾曲腰札の影響
円頭威孔1列
+綴孔8孔
2
3
4
5
6
7
8
9
10
11
12
13
方
頭威孔
2
列
+円頭威孔1列
A
方
頭威孔
2
列
+円頭威孔1列
B
14
扁円頭威孔1列
円頭威孔
2
列
方頭威孔2列+円頭威孔2列
9: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円頭威孔2列
10:大阪府長持山古墳
11:京都府城陽市平川
12: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13:奈良県珠城山3号墳
扁円頭威孔1列
14:奈良県藤ノ木古墳
朝鮮半島系札甲
(日本列島出土)
(朝鮮半島出土)
図2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札甲の変遷
125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0
1:6
20
㎝
2
3
4
5
6
1
7
板籠手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滋賀県新開 1 号墳
筒籠手
3:岡山県天狗山古墳
篠籠手
4:石川県和田山5号墳
5:大阪府長持山古墳
6:愛知県志段味大塚古墳
7:奈良県藤ノ木古墳
2
1:陜川玉田 28 号墳
2:陜川玉田 35 号墳
3:福岡県稲童 21 号墳
4:兵庫県宮山古墳
5:大阪府長持山古墳
6:奈良県藤ノ木古墳
1
2
3
4
5
6
0
1:6
20
㎝
図3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籠手
図4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臑当
126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
1:8
20㎝
板籠手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滋賀県新開 1 号墳
筒籠手
3:岡山県天狗山古墳
篠籠手
4:石川県和田山5号墳A槨
5:大阪府長持山古墳
6:滋賀県円山古墳
7:奈良県藤ノ木古墳
板
籠手
篠
籠手
筒籠手
円頭威孔1列手甲
古墳時代後期
籠
手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臑
当
篠
臑当
1
2
3
4
5
7
6
円頭威孔1列
方
頭威孔
2
列
⬇
⬇
⬇
⬇
篠臑当
8:陜川玉田 28 号墳
9:滋賀県新開 1 号墳
10:福岡県稲童 21 号墳
11:兵庫県宮山古墳
12:石川県和田山5号墳A槨
13:大阪府長持山古墳
14:愛知県大須二子山古墳
15:群馬県綿貫観音山古墳
16:奈良県藤ノ木古墳
手甲構造の継承
円頭威孔
2
列手甲
扁円頭威孔1列手甲
各段威の採用
円頭威孔
2
列
朝鮮半島系甲冑
威技法・綴第2技法の採用
倭系甲冑
古墳時代前期籠手の篠状鉄札構造の採用
⬇
8
9
10
11
12
13
14
16
扁円頭威孔1列
図5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籠手・臑当の変遷
127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10
朝鮮半島系襟甲(背の高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1:玉田M3号墳 2:福泉洞 10・11 号墳
縦矧板革綴襟甲 3・4:福泉洞 21・22 号墳
5:林堂洞G5号墳
倭系襟甲(背の低い襟甲)
縦矧板鋲留襟甲 6:祇園大塚山古墳
縦矧板革綴襟甲 7:松鶴洞 1A-1 号墳 8:山の神古墳 9:藤ノ木古墳
打延式襟甲 10:豊富王塚古墳
0
1:6
20
㎝
5
1
2
3
4
5
7
6
8
9
図6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襟甲
打延式頸甲
肩甲威孔1列 1:向出山1号墳
肩甲威孔 2 列 2:陵山古墳 3:長木古墳
小札・打延式肩甲併用
4:正崎2号墳 5:蓮山洞M8号墳
0
1:6
20㎝
1
2
3
4
5
図7 朝鮮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肩甲を伴う頸甲
128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
1:8
20
㎝
襟 甲
1:東萊福泉洞 10・11 号墳
2: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3:奈良県円照寺墓山1号墳
4:福岡県山の神古墳
5:奈良県藤ノ木古墳
6:山梨県豊富王塚古墳
7:京都府城陽市平川
縦
矧板襟
甲
古墳時代後期
襟
甲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頸甲付属小札肩甲
1
打延式
襟
甲
6
3
襟
甲付属小札肩甲
打延式肩甲
+小札肩甲
小札肩甲
頸
甲
円頭威孔
1
列
円頭威孔
2
列
扁円頭威孔
1
列
方頭威孔
2
列~円頭威孔
2
列
円頭威孔
1
列
襟甲付属小札肩甲
8:千葉県祇園大塚山古墳
9:奈良県円照寺墓山1号墳
10:京都府城陽市平川
11:大阪府長持山古墳
12:茨城県三昧塚古墳
13:奈良県藤ノ木古墳
2
3
4
5
6
7
8
9
10
11
12
13
頸 甲
14:福井県向出山1号墳
15:岡山県正崎2号墳
頸甲付属小札肩甲
16:福井県向出山1号墳
17:韓国蓮山洞M8号墳
18:岡山県正崎2号墳
19:宮崎県下北方5号地下式横穴墓
20:福岡県稲童 21 号墳
21:京都府宇治二子山南墳
22:福岡県稲童 21 号墳
14
15
16
17
18
19
20
21
22
図8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肩甲を伴う襟甲・頸甲の変遷
129
하쓰무라 다케히로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
一枚板頬当
(咸安道項里 36 号墳)
板革綴頬当
(金海大成洞 14 号墳)
篠状鉄札頬当
(玉田 28 号墳)
小札頬当
(福泉洞 21・22 号墳)
小札頬当
(玉田8号墳)
小札頬当
(金井東裏遺跡)
小札頬当
(山梨県かんかん塚古墳)
0
1:6
20
㎝
図9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頬当・錣を伴う冑
130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0
1:8
20
㎝
冑・頬当
1:東萊福泉洞 21・22 号墳
2:山梨県かんかん塚古墳
3:群馬県金井東裏遺跡
4:千葉県金鈴塚古墳
5:群馬県井出二子山古墳
6:埼玉県永明寺古墳
7:栃木県益子天王塚古墳
8:大阪府長持山古墳
9:愛知県大須二子山古墳
10:埼玉県将軍山古墳
11:福岡県山の神古墳
古墳時代後期
襟
甲
朝鮮半島出土
古墳時代中期(いわゆる鋲留技法導入期以降)
衝角付冑
小札
頬
当
2
1
横
矧板鋲
留衝角付
冑
竪
矧
広
板鋲
留衝角付
冑
小札頬当・
錣
を伴う
小札頬当
綴孔
2
孔
綴孔4孔
綴孔4孔+下搦孔
3
4
5
6
7
9
10
11
8
図 10 朝鮮半島および日本列島出土 小札頬当・錣を伴う冑の変遷
131
토론문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에 대한 토론문_이현주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에
대한 토론문
이 현 주
부산박물관
갑주연구는 좁고 세밀하여 연구자집단에서 조차도 접근이 어렵게 여겨지는 전문적인
분야지만, 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기술사적인 검토 외에도 역사적 맥락의
전개, 전쟁과 전술 등 폭넓은 연구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初村武寬
선생님의 고대 일본과 가야의 갑주를 비교 연구하는 논문은 세밀한 부분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번 발표문을 읽고 평소
토론자 자신이 일본갑주연구에 있어서 궁금했던 점을 포함하여 몇 가지 질문하려고 한
다.
1. 고대 일본 갑주의 전개과정에서 찰갑도입기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궁금하
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4세기대에 이미 찰갑전통이 있어 奈良縣 香芝市
城山2號에서 완성형의 찰갑이 출토되었고, 滋賀縣 雪野山古墳에서 출토된 小札冑 등
다수의 사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기대에는 맥락이 연결되지 못했던 배경에
대해서 궁금하다. 또한 기술사적인 측면에서 완성형의 박제품이 고대 일본에 도입되었
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방하여 제작하고자 하는 움직임 없이 15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고
난 후에야 시작하는 배경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2. 고분시대 후기 한반도로부터 도입된 소찰식갑주가 일본에서 수용되는 배경과 구체
적으로 어떤 부분이 변용되어 갔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발표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 특히
群馬縣 金井東裏遺跡과 栃木縣 益子天王塚 등의 충각부주에 부착된 볼가리개와 수미
132
2020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부가리개는 왜계 투구몸체에 삼국의 갑주 제작기술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
구가 왜 만들어졌는지? 한반도로부터 기술자가 건너간 것인지, 혹은 투구의 수리과정에
서 새로운 갑주제작 패러다임을 도입하여 소찰식 볼가리개와 수미부가리개가 부착된 것
인지? 배후에 어떤 정치적인 계기가 있는 것인지? 등 궁금하다. 또한 群馬縣 綿貫観音
山古墳과 福島縣 渕の上1號墳·勿來 金冠塚古墳의 縦矧板冑의 출현배경도 궁금하다. 6
세기 중엽 이후 한국에서는 갑주부장 풍습이 차차 사라지면서 삼국시대 후기 갑주양상
이 명확한 양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위의 사례들이 한반도의 갑주와 완벽하게 일치
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冑體를 縦矧板으로 구성한 점, 소찰식 볼가리개 부착, 관
모형 투구라는 점 등 큰 틀에서는 동일하나, 세부적으로 ˅자모양 眉間部가 없고, 관모
형태가 아래쪽이 축소되는 돌기형인 점, 관모와 주체의 연결방식 등에서 차이가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시기적인 변화인지 모방의 과정에서 변형된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발표
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3. 발표자는 고대 일본의 소찰갑을 8가지로 분류하고, Ⅰ류→Ⅷ류로의 시간성을 반영
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한반도 소찰갑의 정형성을 Ⅱ類에서 찾으며, 5세기 말경에 소
찰갑 Ⅱ類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것을 한반도의 영향으로 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
러면 Ⅴ류 소찰갑으로 형성되어 가는 배경에는 한반도의 영향 없이 일본의 자체적인 발
전과정으로 보는 것인지에 대해서 발표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
4. 한국의 頸甲(발표자의 襟甲)은 최고높이가 15cm가 아니라 20cm 내외로 훨씬 높다
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발표자의 지적처럼 목을 보호하는 경갑과 투구 아랫단에서 내려
오는 볼가리개·수미부가리개는 서로 충돌되므로 일찍부터 길이와 형태를 조절하여 충돌
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4세기대의 종장판갑의 목부분에 부착된
종장판을 부채꼴모양으로 연결한 후경부가 있을 때는 투구에 수미부가리개가 없이 후두
부 지판을 조금 길게 재단하여 간소하게 제작하였다. 그러나 5세기대에는 군사적 상징
성을 극대화 하는 시기에는 투구의 볼가리개와 수미부가리개와 길게 늘어뜨리고, 경갑
역시 높고 넓게 벌어지는 형태로 진행되나, 5세기 후엽이 되면 경갑의 크기를 축소시키
는 경향성을 부산 복천동 140호 경갑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경갑의 구조
도 시간성을 반영하므로 藤ノ木古墳의 경갑(발표자의 襟甲)도 일본 내의 자체적인 구조
개량이라기 보다 한반도에서 도입할 당시에 이미 높이가 낮은 상태였을 가능성은 없는
지 발표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133
토론문
「고대 찰갑으로 본 왜와 가야」에 대한 토론문_이현주
표 1 가야지역 출토 경갑 잔존높이
유적명
높이(cm)
유적명
높이(cm)
107호
20
35호 A
27
70호
23
35호 B
19
M3 A
24
21·22호(주곽)
18
M3 B
22
21·22호(부곽)
20
M3 C
24
10·11호(주곽)
18
M1-A
23
16호
19
140호
19
8호(동아대)
20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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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마갑총 말갑옷 복원제작 경과 소개
함안군
135
함안군
마갑총 말갑옷 복원제작 경과 소개
마갑총 말갑옷 복원제작 경과 소개
함안군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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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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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찰갑 복원과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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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김해박물관 2020
이책의 저작권은 국립김해박물관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 및 자료는 국립김해박물관의 허가를 받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ISBN 979-11-85106-21-2 (93910)
2020
年 11月 17日 印刷
2020
年 11月 20日 發行
발행 :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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