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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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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HAE NATIONAL MUSEUM

전시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

가야 이전 사람들의 삶

낙동강 하류 일대는 가야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활동의 흔적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석기인들은 먹거리를 찾아 옮겨 다니며 이동 생활을 했습니다. 신석기시대에는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물고기나 동물을 잡고, 식물채집으로 먹거리를 얻었습니다.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하였고 초보적인 농사도 지었습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와 간석기,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벼농사 등 농경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는 큰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거대한 고인돌은 농경사회 마을 공동체 의식이 크게 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연표
연표 전시 이미지
1장 가장 오래된 삶의 흔적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을 깨뜨려 사냥과 채집 활동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찌르기, 자르기, 파거나 긁어내기, 빻기 등 다양한 용도에 맞는 뗀석기를 제작하였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을 이용했지만, 용도에 따라 특정한 돌을 골라 만들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석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고 정교해졌습니다.

1장 가장 오래된 삶의 흔적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2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
2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 전시 이미지

노 - 창녕 비봉리, 길이 178.4cm

2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 전시 이미지

신석기시대 배(재현품)

2장 강과 바다로 나가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부족한 자원을 주변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얻었습니다. 때로는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동남해안 일대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과 일본 조몬(繩文)토기는 일본 규슈(九州)지역과 교류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 팔찌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대표 교역품 중 하나였습니다.

2장 강과 바다로 나가다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3장 패총
3장 패총 전시 이미지

창녕 비봉리

4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약 1만 년 전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지금과 비슷하게 변해갔습니다. 활과 화살을 이용해 사슴, 멧돼지 같은 따뜻한 날씨에 사는 빠른 동물들을 사냥했습니다. 강가나 바닷가에서는 뼈나 돌로 만든 낚싯바늘과 작살, 그물을 이용해 다양한 먹거리를 확보했습니다. 망태기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사냥과 채집으로 얻은 먹거리를 넣어 두었을 것입니다. 돌로 만든 보습, 괭이를 이용해 땅을 일구며 농경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4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5장 토기의 등장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진흙을 구우면 단단하게 변한다는 것을 터득하고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토기의 발명으로 어렵게 확보한 먹거리의 보관, 운반이 손쉬워졌고 조리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대략 1만 년 전에 출현한 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생김새와 무늬가 다양해집니다. 덧무늬(隆起文), 눌러그은무늬(押引文) 등 다양한 무늬 중에서도 무늬 새기개로 그어 새긴 빗살무늬(櫛文)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5장 토기의 등장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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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신석기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동굴에 놓아두거나 뼈만 추려 모아 둔 경우도 있습니다. 조가비나 짐승 뼈 등으로 만든 팔찌나 발찌로 죽은 이를 치장하고 토기를 옆에 두기도 했습니다. 부산 가덕도에서는 신석기시대 공동묘지가 발견되었는데 확인된 인골만 48개체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입니다. 죽은 이의 몸을 곧게 펴 묻었던 다른 지역의 무덤과는 달리, 죽은 이를 엄마 뱃속 아기 모습처럼 웅크린 자세로 묻는 굽혀 묻기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6장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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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농경과 마을의 탄생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조·기장 위주의 소규모 잡곡 농사와는 달리 벼농사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큰 규모의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여러 채의 움집, 논과 밭,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이나 울타리가 청동기시대 마을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농사가 가장 중요한 생업수단으로 정착하면서 땅을 일구고 수확하는 도구들도 발달했습니다.

7장 농경과 마을의 탄생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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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청동기시대 살림살이_돌로 만든 도구

농사가 청동기시대 중요한 생업수단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사냥과 물고기잡이는 여전히 중요한 먹거리 확보 방법이었습니다. 돌화살촉과 돌창, 그물추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각종 생활 도구를 만드는 데 나무는 이때에도 핵심 재료였습니다. 나무를 정교하게 가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가 발달했습니다. 조갯날 도끼·자귀·대팻날·끌 등이 대표적인 목공구입니다. 옥돌을 다듬어 영롱한 빛깔을 내는 목걸이를 만드는 데도 돌로 만든 공구를 사용했습니다.

8장 청동기시대 살림살이_돌로 만든 도구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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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청동기시대 살림살이_무문토기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그릇은 민무늬토기(無文土器)입니다. 민무늬라 하지만 아가리 겉면에 짧은 선이나 구멍 등 간단한 무늬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바리·대접·접시·항아리·독 등 필요한 용도에 따라 생김새가 다양하지만 바닥은 대체로 납작합니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이며 꾸준히 사용되었습니다.

9장 청동기시대 살림살이_무문토기 전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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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특별히 많은 공을 들여 만든 특별한 토기입니다. 붉은 안료를 개어 발라 문질러 윤을 내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검은 가지무늬를 표현했습니다. 질 좋은 바탕흙을 사용한 데다 정성스레 만든 덕에 다른 살림살이들처럼 투박하지 않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귀한 그릇으로 대접받았고 무덤의 껴묻거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10장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10장 붉은간토기
10장 붉은간토기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11장 고인돌_농경사회의 기념물

농경사회에서는 물 대기, 씨 뿌리기, 수확하기 등 마을 전체의 단결과 공동 노동이 중요해졌습니다. 농경의 발달은 공동체 안팎으로 여러 갈등을 발생시켰고 이를 조정하는 인물의 역할과 권위도 점차 높아졌습니다. 거대한 크기의 고인돌에 넣어 둔 돌칼과 돌화살촉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부 과장된 크기와 형태의 돌칼과 돌화살촉은 실용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점에서 단순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을 알려줍니다.

11장 고인돌_농경사회의 기념물 전시 이미지
전시장 전시품 소개
11장 간돌칼
11장 간돌칼 전시 이미지

傳 김해, 길이 5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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