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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마당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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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 전화
  • 055-320-68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은 휴관일 입니다.
  • 코스별 관람안내
  • 오시는 길

3전시실

3실. 가야의 성립과 발전

가야加耶는 낙동강 서쪽의 변한 지역에 있었던 여러 세력 집단이 성장한 나라입니다. 그 명칭은 가야加耶 가야伽耶 가라迦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가락伽洛 임나任那 등 다양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에 따른 가야 영역은 오늘날의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과 가야산 일대로, 낙동강 서쪽의 영남지역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야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영역이며, 가야의 빠른 시기 영역은 고고학연구 성과에 따라 낙동강 동쪽 일부 지역까지입니다. 가야는 가야,6가야,가야7국,포상浦上8국,임나任那10국 등의 형태로 문헌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금관가야,대가야,소가야,아라가야,비화가야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여러 소국小國으로 구성된 가야는 백제·신라와 패권을 다투었지만,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562년)되면서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진열장사진

29장 구슬을 보배로 삼다가 금ㆍ은으로 치장하다.

화려한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그것을 착용한 사람의 정치ㆍ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역할도 합니다. 가야 이전의 변한사람들도 수정·호박·마노 등의 보석 광물과 함께 유리·금속을 이용하여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1-3세기 유적에서도 옥이나 유리로 만든 구슬 장신구가 자주 발견되고, 3세기 대의 문헌인『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진ㆍ변한 사람들은 금ㆍ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구슬을 꿰어 보배로 삼는다’는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김해 대성동유적에서 금동관ㆍ허리띠ㆍ말갖춤 등이 확인되며, 금ㆍ은으로 만든 귀걸이나 팔찌는 5세기 중엽 이후에 많아집니다.

전시장 유물 소개

  • 유물1
  • 유물이름 : 금귀걸이,
  • 유물설명 : 합천 옥전, 가야, 길이 5.5㎝
  • 유물1
  • 유물이름 : 금귀걸이,
  • 유물설명 : 합천 옥전, 가야, 길이 6.5㎝
  • 유물1
  • 유물이름 : 은팔찌
  • 유물설명 : 고성 내산리, 가야, 지름 7.5㎝